신간회 원산지회 회원들.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2.1.29
신간회 원산지회 회원들.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2.1.29

민족대표 48인으로 3.1운동 참가

신간회 원산지회 회장에 선임 

[천지일보 천안=박주환 기자]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이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강기덕(1886~미상) 선생을 2022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전시회는 2월 한달간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신간회 강령 등 8점을 전시한다.

1886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강기덕은 1919년 보성법률상업학교(普成法律商業學校) 학생 대표로 3.1운동에 앞장섰다. 학생들에게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배포하고 1919년 3월 5일 남대문역에서 인력거를 타고 선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시위를 주도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첫 번째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고향으로 돌아온 강기덕은 원산·덕원지역 청년운동의 지도자로서 활동을 전개했다. 1923년 1월 원산교풍회(元山矯風會)를 조직해 폐습(弊習) 철폐에 앞장섰으며, 8월에는 함남도민대회를 개최해 지역민의 열악한 생활환경 개선에 힘썼다. 

1926년에는 덕원청년동맹(德源靑年同盟) 창립에도 적극 참여해 농촌문화 향상을 위한 순회강연을 진행했다. 그러던 중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다시 한 번 옥고를 치러야 했다.

신간회 강령(1927).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2.1.29
신간회 강령(1927).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2.1.29

강기덕은 출옥 직후 1927년 창립된 신간회(新幹會)에 참여해 원산지회 설립준비위원 등을 맡았다. 당시 함남기자연맹에도 소속돼 언론 자유를 위해 힘쓰다 8개월간 옥고를 치렀지만, 출옥 후 1930년 신간회 원산지회 회장에 선임되고 1931년에는 중앙집행위원장을 맡아 신간회 활동을 이끌었다. 

신간회 해소 후 1933년 원산노동조합의 재건 등에 힘쓰던 중 네 번째 옥고를 치루는 등 거듭된 옥고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을 이어나간 그의 공훈을 기리어 정부는 1990년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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