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교육청 전경. (제공: 경기교육청) ⓒ천지일보 2021.12.2
경기도교육청 전경. (제공: 경기교육청) ⓒ천지일보 2021.12.2

교육청, 중기 못 들어오게 입찰 문턱↑

정황상 ‘대기업 몰아주기’ 의혹 제기돼

중소社 “공공 조달 취지에 맞지 않아”

“중소기업 상생 정책과도 거리감 있어”

[천지일보=손지아 기자] KT·삼성전자 등 대기업과 교육청이 중소기업을 배제하고 국민 세금을 바탕으로 태블릿PC 공공 조달 시장을 독점해 부당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중소기업 관계자 A씨는 이 같은 내용의 제보를 천지일보에 보냈다.

현재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 사태가 길어지면서 디지털 교과서 보급사업의 일환으로 태블릿PC를 구매해 각급 학교에 보급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교육청이 공고한 사전규격과 입찰 방식을 두고 “KT·삼성전자 등 대기업의 독점을 교육청이 돕고 있다”는 의혹이 나왔다. 사전규격과 계약 방식이 중소기업이 공정하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목표로 하는 ‘중소기업 상생’ 정책에 어긋나는 행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입찰 방식 즉 계약 방식은 두 가지다.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과 ‘다수공급자 계약 제도’다.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은 기술, 예술성, 안전성의 측면에서 기술평가위원들이 주는 점수와 가격에 대한 점수를 합산해 높은 점수를 받은 사업자가 최종 입찰된다.

문제는 기술평가위원들의 점수를 항상 KT가 최고점을 받았고 중소업체는 그의 2/3 수준의 형식적인 점수만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가격 점수보다 위원들의 점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크기 때문에(KT의 경우 보통 위원 점수:가격 점수=9:1) 이렇게 되면 KT는 어떤 가격으로 태블릿PC를 공급하든지 무조건 입찰된다. 중소업체가 1원에 태블릿PC를 공급하겠다고 해도 입찰에서 떨어지게 된다. A씨는 “KT가 얼마를 적었는지 공개되진 않지만 금액을 본 사람은 모두 ‘비싸다’고 말했다”며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지는 사업에 교육청과 대기업이 짜고 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KT가 입찰을 따내고 삼성전자가 단말을 공급하는 형태로 대기업끼리 뭉쳤다”고 부연했다.

‘협상에 의한 계약’에 중소기업이 입찰되기 힘든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이 계약은 ‘제안서 제출’로 이뤄지는데 이를 만드는 작업이 중소기업에는 엄청난 부담이다. 예를 들어 1000억원이 넘는 사업 제안서는 완성에만 몇억원이 소요된다. A씨는 “800페이지 넘게 제안서를 준비해야 하는데 대기업은 외주를 맡기면 그만이지만 중소기업은 너무 힘이 든다”고 호소했다.

또 그는 “태블릿PC는 예술성·안전성의 측면에서 평가할 게 없는 제품으로, 단순 구매에 불과하다”며 “다수공급자 계약에 맞는 사업인데 이를 교육청이 협상에 의한 계약으로 진행하는 부분도 부적절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경기도교육청 전경. (제공: 경기교육청) ⓒ천지일보 2021.11.28
경기도교육청 전경. (제공: 경기교육청) ⓒ천지일보 2021.11.28

일부 교육청은 이 같은 업계의 항의에 ‘협상에 의한 계약’에서 ‘다수공급자 계약’으로 변경했다. 다수공급자 계약은 교육청이 정한 사전규격에 맞는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사업자는 모두 참여할 수 있다. 참여만 하면 사업자 중 가장 낮은 가격을 제출한 사업자가 최종 입찰된다. 하지만 교육청은 이 계약에서도 중소기업이 쉽게 참여하지 못하도록 문턱을 높였다.

이 태블릿PC 규격을 맞출 수 있는 기업은 중국의 레노버와 삼성전자 등 대기업밖에 없다. 사실상 국내 중소기업의 참여를 원천 봉쇄한 것과 다름없다. A씨의 회사가 공급하는 태블릿PC 단말은 SD카드 64㎇, 내장 64㎇로 총 저장용량 128㎇의 모델이다. 삼성전자와 중국의 레노버가 공급하는 단말은 내장으로만 128㎇의 저장용량을 가지고 있다. 이에 교육청은 명확한 기준 없이 ‘내장’으로만 128㎇의 저장용량으로 사전규격을 정해 A씨의 업체를 입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했다.

맹점은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대기업보다 기술력에서 밀리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A씨의 회사는 삼성전자보다도 먼저 태블릿PC를 소규모 개발한 경력이 있는 업체였다.

A씨는 “지금도 일부 수요기관은 제품 규격 사항을 특정 대기업 규격에 맞춰 구매 공고를 게시해 중소기업들이 참여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며 “이런 부분은 공공 조달의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 중소기업들은 제품의 개발, 제조, 유통, 서비스까지 품질 및 서비스 개선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대기업에 가까운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하고 있다”며 “조달 시장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이다. 중국산 제품이나 국외 기업의 제품들이 조달 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은 현 정부의 중소기업 상생 정책과도 거리감이 있는 현상”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국내 조달 시장은 국내 중소기업들에 많은 기회를 제공하며 성장할 수 있는 무대여야 한다. 이런 선순환의 과정은 지역 경제 발전 및 고용 창출의 기회로도 이어지며 중소기업이 성장 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와 관련 지난 9월 강원도교육청이 실시한 태블릿PC 구매사업에서도 특정 업체만 참여할 수 있는 규격 사항이 공고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경기도교육청에서는 지난해 1078억원이 투입돼 진행된 무선 AP 사업에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을 도입했다가 행정 편의적 시행 방식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경기도교육청은 이에 따라 올해 진행한 태블릿PC 보급 사업에서는 다수공급자 계약 제도를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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