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가톨릭
“비밀유지 의무가 법보다 먼저
신 앞 자유로운 고백 있어야”
프랑스 정부
“프 법보다 위에 있는 것 없어”
가톨릭 측 입장 강하게 질책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가톨릭 신부가 고해성사 도중 범죄와 관련된 고백을 들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프랑스 성직자들이 70년간 20만명에 달하는 아동을 대상으로 성학대를 저질렀다는 조사 결과로 해묵은 ‘고해성사 비밀유지’ 논쟁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범죄 사실과 관련된 고해성사를 들은 신부들의 신고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과 고해성사는 신성불가침한 영역으로 사제로 하여금 고해성사 내용을 누설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는 의견이 충돌한 것이다.
이는 프랑스 가톨릭 성학대 독립조사위원회가 아동 성직자 사건을 인지한 성직자는 이를 검찰에 알리라고 권고하면서 촉발됐다. 앞서 최근 프랑스 가톨릭교회에서 성적 학대를 당한 미성년자가 21만 6000명이고 교회가 운영하거나 교회와 연계된 기관에서 발생한 학대까지 합치면 피해자가 33만명으로 늘어난다는 보고서가 발표돼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에릭 드 물랭 보포르 프랑스 주교회의 의장은 지난 6일(현지시간) 프랑스앵포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아동 성직자 사건을 인지한 사제가 경찰에 신고하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고해성사 비밀유지 의무가 “어떤 면에서는 프랑스 법 위에 있다. 그래야 신 앞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할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그의 발언은 거센 비난을 받았다. 정교분리를 중시하는 프랑스 정부 역시 이를 반박했다. 가브리엘 아탈 정부 대변인은 7일 “프랑스에서 프랑스 법보다 위에 있는 것은 없다”고 선을 그은데 이어 제랄드 다르마냉 프랑스 내무장관은 물랭 보포르 의장과 12일(현지시간) 면담에서 가톨릭 측 입장을 강하게 질책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했다.
가디언은 다르마냉 내무장관은 신부들이 아동 성범죄 혐의와 관련해서는 고해성사에서 들은 어떤 것이라도 경찰에 알려야 한다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결국 물랭 보포르 의장은 이날 성명을 내고 아동 성범죄와 관련해서는 고해성사 비밀유지 의무가 법보다 우위에 있어선 안된다고 한발 물러선 입장을 밝혔다.
고해성사를 둘러싼 논란은 사실 오랜 시간 이어져왔다. 고해성사란 가톨릭의 7성사 중 하나다. 자신들이 알게 모르게 범한 모든 죄를 스스로 성찰하고 진정으로 뉘우치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로 결심하고 고해소에서 사제에게 죄를 고한 후 용서를 받는다.
가톨릭에서 고해성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으로 여긴다. 신자는 물론 사제들도 참여한다. 가톨릭법상 우선 고해성사를 받은 사제들은 자신이 들은 죄의 내용을 타인에게 어떠한 이유로든 발설할 수 없다. 사제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누설할 수 없으며 예외란 절대 없다. 만약 이를 어기고 타인에게 고해성사 내용을 발설하면 파문돼 사제직을 면직당하는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최근 수십년간 은폐됐던 사제들의 성폭력, 아동학대 등이 폭로되면서 범죄와 관련된 고해성사 내용이라면 들은 사제는 의무적으로 증언하도록 해야 한다는 사회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교황청은 지난 2019년 당시 발표문에서 사제들이 생명을 잃을 위기가 닥치거나 피 흘림 등 어떠한 대가를 치르게 되더라도 고해성사 내용은 끝까지 비밀유지 의무를 지켜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또한 고해성사를 듣는 사제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한 자리라며 신으로부터 임무를 부여 받은 만큼 어떤 정부나 법률로도 고해성사의 비밀유지 규정 위반을 강요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고해성사의 비밀유지라는 신성 불가침한 성격을 깨뜨리는 목적의 모든 정치적인 행위나 법안은 교회의 자유에 대한 용인할 수 없는 공격이자 종교의 자유를 훼손하는 것이란 점을 확실히 한 것이다. 가톨릭 교계도 일제히 고해성사 내용 발설은 교회를 향한 범죄일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행위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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