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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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고봉산은 해발 200m 높이로 시민들의 공원이자 둘레길이다. 한강을 낀 넓은 평야에서 우뚝 섰다고 하여 고봉산으로 불렸다. 고봉산 정상에는 고성이 남아 있어 고봉산성이라고 부른다.

고봉산성은 본래 백제에서 쌓은 테메식 산성이지만 이 지역이 고구려 영토가 되어서는 매우 중요한 성으로 기능을 했던 것 같다. 이 산성에는 매우 재미난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바로 고구려 제 22대 안장왕(재위 519∼531)과 백제 한주(韓珠)미녀와의 사랑이다.

이 이야기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과 해상잡록(海上雜錄)에도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해상잡록’이란 전적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단재 신채호 선생이 조선상고사에 해상잡록을 토대로 안장왕과 한씨 미녀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안장왕은 태자 시절에 백제 땅인 개백(지금의 행주산성 부근)에 잠입했다. 그곳에는 장자(長者)인 한씨(韓氏)가 살고 있었는데, 그의 딸 주(珠)가 절세미인이었다. 한씨 저택으로 숨어든 태자는 낭자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두 남녀는 남모르게 정을 통하고 부부가 될 것을 약속했다. 고구려로 돌아온 태자는 부왕인 문자명왕이 죽자 곧 왕이 됐다. 안장왕은 한씨 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군사를 일으켜 백제를 쳤으나 실패만 거듭했다. 한편 개백현 태수는 한씨 미녀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청혼을 했다. 한씨 미녀는 거절했다. 화가 난 태수는 한씨 미녀를 옥에 가두고 온갖 감언이설로 꾀었다. 그러나 한씨 미녀는 시를 읊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지조를 밝힌다.

‘죽어죽어 일백 번 다시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야 있건 없건/ 임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가 불렀다는 단심가가 이 설화에 나오는 것이 주목된다. 이 얘기는 남원지방을 무대로 하는 고전 춘향전과 이야기 구성이 닮아 한주미녀의 설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기록에는 안장왕 재위 11년 10월에 오곡원(五谷原)에서 백제군과 싸워 이기고 적 2000여명을 죽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오곡원’은 바로 지금의 고양시 덕양구 대곡, 능곡역 부근이며 이곳에서 고봉산이 우뚝 서있는 것이 보인다.

고봉산 중턱에 있는 큰 바위 군에서 성혈(星穴)과 바위그림이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성혈은 순수한 우리말로 ‘굼(고 손보기 박사)’이라고 부르며 다산신앙의 표현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선사시대 유적 바위나 고인돌 덮개에 많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 바위군 제1 바위에는 여러 모양의 선각그림도 보이고 있다. 흡사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형태도 보인다. 또 이들 앞에서 부복하고 있는 사람 모습도 있다. 들짐승과 새 같은 형태의 그림도 있다.

바위군 주변에서는 구석기, 청동기 유물이 수습되고 있으며 삼국시대 와편과 토기편도 다수 산란하고 있다. 수만년 전부터 신성한 곳임을 알려 주며 예배를 위한 건물이 있었던 것을 말해 준다.

고구려의 신모(神母)는 아버지가 없는 주몽을 잘 키워 고구려 시조로 등극시킨 유화(柳花)다. 고구려인들은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를 숭배하고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어머니의 위대한 정신을 국가의 제일정신으로 기린 것인가.

고봉산 바위그림이 신모상이라면 이 유적은 고구려 고분에 버금가는 최고의 유적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날로 퇴락하는 이 시대 인륜을 다시 회복시키라는 하늘의 계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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