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일보=원민음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25일 기업의 자사주(자기주식) 소각을 원칙적으로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3차 상법 개정안’을 연내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주주 충실 의무 명문화, 집중투표제 의무화에 이은 자사주 소각 의무를 담은 세 번째 상법 개정을 연내에 마무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금번에 상법 개정을 통해 자사주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고, 자사주 마법을 우리 자본시장에서 퇴출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미 1차로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고, 2차로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을 담은 상법 개정을 관철한 바 있어, 이번 자사주 개혁안까지 더해 ‘3단계 상법 개편’을 완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개정안의 설계·발의를 주도한 곳은 민주당 ‘코스피5000 특별위원회’다. 특위 위원장인 오기형 의원은 전날(24일) 자사주를 취득한 회사가 1년 이내 이를 소각하도록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오 의원은 “어제 다양한 논의를 거쳐 코스피5000 특위 차원에서 자사주 개혁을 위한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며 “그동안 자사주를 대표이사의 특수관계인에게 처분하면서 지배력 강화를 이유로 한다며 공공연하게 시장을 우롱하는 등의 방식은 멈춰야 한다는 비판이 쌓여 있었다”고 말했다.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 수단이나 대주주·특수관계인 지배력 강화용으로 활용해 온 ‘자사주 마법’을 법 개정을 통해 원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법안의 골자는 자사주를 원칙적으로 ‘소각 전용’으로 규정하는 데 있다. 우선 회사가 새로 자사주를 취득할 경우 1년 이내 소각을 의무화했다. 자사주를 매입해 장기간 보유하거나 필요할 때마다 대주주 측에 유리한 방식으로 처분하는 관행을 끊겠다는 것이다. 다만 임직원 보상, 스톡옵션, M&A 활용 등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회사가 구체적인 사용 계획을 수립해 주주총회 승인을 받은 뒤에만 예외적으로 보유하거나 처분할 수 있도록 했다.
규제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한 제재 조항도 신설됐다. 개정안은 주주총회 승인을 받지 않은 채 자사주를 1년 이내 소각하지 않을 경우 해당 회사 이사 개인에게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회사 책임’이 아닌 ‘이사 개인 책임’을 명시해 이사회가 자사주 운용을 느슨하게 관리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오 의원은 “현재도 신규 발행 절차가 잘못되면 규제하는 규정이 있는데 이를 그대로 준용한 것”이라며 “신주 발행을 할 때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상당 부분 보장하는 장치가 작동하고 있고 그 장치를 자사주가 회사 밖으로 나갈 때 그대로 작동하게 하는 것이 고민의 포인트였다”고 설명했다.
자사주의 법적 성격도 기존 ‘자산’에서 ‘자본’에 가깝게 재정의했다. 법안은 자사주를 회계상 자산이 아닌 자본으로 간주해 교환·상환의 대상이 되지 못하도록 하고, 질권 설정이나 담보 제공의 수단으로 쓰지 못하도록 못박았다. 이와 함께 회사 합병·분할 시 자사주에 대해서는 분할신주를 배정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자사주를 시장에 처분할 때는 모든 주주에게 보유 주식 수에 비례해 균등한 조건으로 처분하도록 규정했다.
이미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에 대한 적용 방식도 담겼다. 법안 시행 이전에 회사가 직접 취득해 보유 중인 자사주에도 동일한 소각·처분 의무를 부과하되, 제도 전환에 따른 혼란을 고려해 6개월의 추가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기업들이 기존 자사주 활용 계획을 재조정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적응 기간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오 의원은 재계 우려를 묻는 질문에 “충분히 그간 다양한 형태로 재계의 의견을 반영했다”며 “경영진이 주주들을 설득할 만큼의 내용을 준비하면 (예외적 처분이) 가능하다. 그래서 주주총회에 권한을 맡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주 발행 절차에서 문제가 되는 건 주총에서 다 결정하기 때문에 주주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를 경영진이 얘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상법 전문가 출신인 김남근 의원도 경영권 방어 수단이 사라질 것이라는 재계 우려를 일축했다. 그는 “법안에 예외적으로 자사주 보유할 때 주주총회 승인을 받도록 돼 있다. 주주총회 관련해서 충분히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지지 얻어낼 수 있다고 본다”며 자사주 활용의 ‘통로’를 완전히 막은 것이 아니라, 주주 다수의 동의라는 민주적 절차를 거치도록 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영권 방어에 대해서는 재계와 간담회 할 때 의무공개 매수제도라든가 재계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는 입법을 후속으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자사주를 활용한 자본정책과 경영권 방어 전략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만큼, 재계와의 충돌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많다. 기업들은 유동성 관리, 주가 부양, 적대적 인수합병(인수·합병) 방어 등 다양한 목적에서 자사주를 활용해 왔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와 예외적 처분 시 주주총회 승인 요건이 강화되면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자본정책 운용 폭이 좁아지고 경영전략 수립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은 이번 3차 상법 개정안 역시 앞선 1·2차 개정안과 마찬가지로 당내 의견 수렴을 거쳐 공식 당론으로 채택한 뒤, 여야 협상을 통해 연내 국회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한다는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