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시사평론가

내년 6월 3일 치러질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가 6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긴 했지만 출마 채비를 갖추는 사람들은 딱 지금, 연말·연초가 매우 중요하다. 지역 여론에서의 기선을 제압하고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좋은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예비후보들의 하마평도 대략이나마 언급되는 시점이다. 공천권을 쥔 각 정당에서는 이미 물밑 경쟁이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이에 따라 유력 정치인의 경우 당 안팎에서의 존재감을 높이려는 시도가 부쩍 많아진다. 그래야 지방선거 정국에서 작은 영향력이라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자신이 힘을 실어 줘야 할 다른 예비 후보들을 위해 존재감을 높이려는 시도라 하겠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행보가 최근 관심을 끌고 있다. 검찰이 대장동 일당에 대해 항소를 포기한 상식 밖의 행태가 불을 지폈다. 법률 전문가로서, 그리고 전직 법무부 장관으로서 그의 말엔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검찰의 항소 포기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검찰이 자살했다”는 극언까지 할 정도이다. 그리고 이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향해 언제 어디서든 토론하자며 공개적으로 제의한 상태다. 이에 관심을 보이는 여권 인사들이 있긴 하지만 실력이나 명분, 정치적 효과에서도 한 전 대표를 앞서기는 어렵다. 게다가 최근 론스타와의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정부가 승소할 수 있게 만든 주역 가운데 한 명이 한 전 대표다. 당시 민주당은 강하게 반대했었다. 그러기에 기세와 여론에서도 한 전 대표를 압도하기 어렵다. 그래서 희생타가 필요한 한 전 대표의 마음만 바쁘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에서 가장 급한 쪽이 한 전 대표라면, 범여권에서는 조국혁신당 신임 조국 대표가 제일 바쁘다. 명색이 제3당이지만 전국 어디서든 경쟁할 만한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호남, 특히 광주와 전남이 좋지만 최근 당세가 별로 좋지 않다. 새 지도부가 꾸려진 만큼 당장 당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조 대표가 생각하고 있는 내년 지방선거 기대치는 간단하다. 민주당이 놀랄 만큼의 성과를 내서 조국혁신당의 위상과 조 대표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기 총선은 물론 대선에서도 의미 있는 행보를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주당과의 합당이든, 독자노선이든 그 열쇠를 쥘 수 있다는 판단이다. 조 대표가 특히 부산시장 선거에 관심을 갖는 배경이기도 하다. 고전에 ‘성동격서(聲東擊西)’라는 말이 있다. 호남 전선을 위해서도 부산이 최적지이며, 차기 총선과 대선을 생각하더라도 부산만한 곳이 없다. 이를 위해서라도 지금은 자신의 존재감을 높여야 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목마른 사람이 먼저 우물을 판다고 했다. 한 전 대표와 조 대표의 최근 설전은 이러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대장동 항소 포기를 놓고 ‘공개 토론’ 얘기가 오간 것도 이런 이유다. 물론 조 대표가 응해서 얻을 것은 별로 없다. 자칫 대장동 일당을 옹호하거나 항소를 포기한 검찰을 두둔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말 한 방에 날아갈 수도 있는 일이다. 조 대표가 “한동훈 씨의 칭얼거림에 응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 것도 이런 배경이다. 그럼에도 조 대표는 목이 마르다. 그의 존재감 없이는 조국혁신당의 존재감도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게 현실이다. 새 지도부를 꾸린 조국혁신당이 깊이 고민할 대목이다. 분명한 것은 ‘민주당 편들기’만으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진짜 ‘국민의 편’으로 돌아와야 한다. 민주당보다 더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마음이 워낙 급해서일까. 아니면 신임 대표로 선출된 이후의 컨벤션 효과에 더 욕심이 났던 것일까. 조 대표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대장동 항소 포기 관련 토론을 하자고 제의했다. 한 전 대표는 빠지고 제2당과 제3당 대표가 만나서 토론을 하자는 취지로 보인다. 이에 장 대표도 “조국 대표님 좋습니다. 저와 토론합시다”라고 화답했다. 따지고 보면 장 대표도 특히 수도권에서의 존재감 부각이 시급하다. ‘극우’ 이미지로는 뭘 해도 좋은 소리를 듣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가 먼저 토론을 제안했지만 박수 소리는 딴 데서 나는 셈이다. 이 대목은 한 전 대표 스스로 성찰할 대목이다. 맞는 얘기를 하고도 역풍을 맞는 모습, 그건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치인의 태도는 말보다 중요하다. 말은 잊혀질 수 있지만 태도는 그 이미지로 각인되기 십상이다. 마음이 급한 건 이해할 수 있지만 가벼운 언행이나 태도의 비호감은 오래 가는 법이다.

토론을 하자고 먼저 뱉은 말이 있으니 조 대표가 이쯤에서 발을 빼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조 대표가 선전할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점이다. 여론의 관심만큼이나 상처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프레임 전략에서부터 불리하다. 의도치 않게 대장동 일당 편에 서거나 기소를 포기한 검찰에게 박수를 보내야 한다. 반면에 장 대표는 ‘희대의 도둑놈 편’이라고 조 대표를 쏘아붙일 것이다. 거기서의 구차한 설명이나 납득하기 어려운 법리는 국민에겐 관심 밖이다. 조 대표가 자칫 안 하느니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약속을 했으니 지킬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절치부심, 장 대표가 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을지도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래저래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승부를 건 포석들이 하나둘 던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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