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를 상대로 한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최종 승소한 결과를 놓고 정부와 정치권이 낯 뜨거운 ‘공’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번 승소 결정은 론스타가 2012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거액의 배상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한 지 13년 만이고, 2023년 9월 정부가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판정 취소신청을 제기한 지 2년여 만의 결과다.
2억 1650만 달러(약 3200억원)에 달하던 배상 책임이 완전히 사라졌고, 소송 과정에서 지출한 73억원의 비용도 돌려받게 됐다. 판정 취소율이 5% 남짓에 불과한 현실을 고려하면 이번 결말은 흔치 않은 ‘역전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 관계자들과 변호인단이 수년 동안 법리의 가장 미세한 부분까지 파고들며 치열하게 싸워온 노력이 결실을 맺은 셈이다.
그러나 성과 못지않게 곱씹어야 할 대목은 정치권의 반응이다. 전·현 정권 인사들은 승소 소식을 두고 서로 앞다퉈 가며 공치사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와 여권은 “새 정부의 대외적 쾌거”라고 치켜세우고, 법무부는 “국제법무국 직원들의 헌신을 이재명 대통령이 뒷받침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시절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판정 취소신청을 결정했을 때 더불어민주당이 “한국 정부의 책임만 더 키운다” “로펌을 위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던 적이 있었다. 정권이 바뀌자 그 공을 자신들의 외교적 성과로 돌리려 하니 “뒤늦게 숟가락 얹기”라는 냉소가 나오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론스타 사태는 2003년 외환은행을 1조 4000억원에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론스타는 10년도 채 되지 않아 하나금융에 외환은행을 매각하며 4조 7000억원 가까운 이익을 챙겼다. 외환카드 주가조작, 헐값 매각 논란 등 각종 의혹이 뒤얽힌 이 과정은 여섯 개 정부를 거치며 오랫동안 정치·경제·사법 전반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론스타는 매각 지연에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손해를 봤다며 6조원이 넘는 배상을 요구했지만, ICSID가 그 가운데 약 4.6%만을 한국 정부 책임으로 인정했고, 이번 판정 취소로 그마저도 무력화됐다. 이는 단순한 법률적 승패를 넘어, 지난 20여년 동안 반복됐던 금융규제·정책결정·사법판단의 혼란과 지연이 얼마나 ‘비용’이 큰 문제였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정치권은 이번 승소는 종착점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론스타는 여전히 한국 정부의 불법행위를 주장하며 추가 소송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한국을 상대로 진행 중인 국제투자분쟁만 6건이고, 글로벌 투자가 늘어날수록 유사한 갈등은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투명한 규제, 명확한 행정절차, 정치적 안정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ISDS 분쟁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정치권은 이념이나 정파적 유불리를 넘어 국가적 법무 역량과 분쟁 대응 체계를 근본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공치사 경쟁이 아닌, 제도적 개선을 통해 다시는 론스타와 같은 장기 소송이 국가를 붙잡아두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