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폐플라스틱. ⓒ천지일보DB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폐플라스틱. ⓒ천지일보DB

[천지일보=정다준 기자] 국내 산업계가 재생 플라스틱(rPET) 페트병 전환, RE100 참여, 폐어망 재활용 섬유, 재사용 용기 도입, 인공지능(AI) 기반 분리배출 시스템 등 친환경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롯데칠성음료는 칠성사이다 500mℓ 페트병을 국내 최초 100% rPET로 바꿔 연간 2200t의 플라스틱과 2900t의 탄소를 줄이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특히 식음료업계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rPET 10% 의무제를 준비하며 고품질 재생원료 확보와 위생·안전성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3중 검증 체계까지 구축하고 있다. 기술은 이미 충분히 도달했고, 기업은 더 빨리 뛰고 있다.

그러나 시민의 일상은 여전히 제자리다. 기후 행동을 어렵게 만드는 건 기술의 부족이 아니라 ‘의식의 부족’이라는 지적이 반복되지만 실제로는 의식의 부족보다 정보의 부족이 더 근본적인 문제로 보인다. 알고 실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멈춰 있는 것이다.

전자영수증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결제와 동시에 자동 발급되고 별도의 앱 설치 없이 국민은행·카카오톡·삼성전자 등 이미 익숙한 모바일 생태계에서 받을 수 있다. 종이영수증 한 장당 탄소배출량 10g을 고려하면 전자영수증만으로도 연간 수십만t의 탄소를 줄일 수 있다. 그럼에도 보급률이 5% 미만에 머무르는 건 전자영수증이 ‘싫어서’가 아니라 전환의 필요성과 환경적 효과가 시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민은 종이를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왜 바꿔야 하는지 모른 채 관성적으로 종이를 받고 있을 뿐이다.

재활용 현장에서도 구조는 비슷하다. 많은 시민이 매일 분리배출을 하지만 그 과정이 어떻게 환경적 효과로 이어지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는다. 투명페트병 단독 배출의 취지와 필요성, 라벨 제거 기준, 세척 정도 등 실천을 좌우하는 필수 정보는 여전히 생활 속에서 체감되기 어렵다. 기업은 고품질 재생원료 확보가 가장 큰 과제라고 말하지만 실제 병목은 기술 수준이 아니라 참여를 끌어내기 위한 정보 설계와 안내 체계의 부족이다.

유통·패션 업계는 폐어망·폐그물을 재활용한 기능성 의류와 가방을 내놓고, 재사용 컵을 확대하며, 도시락·밀키트 포장재를 rPET로 바꾸고 있다. 하지만 시민 참여가 낮아 실질적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한쪽에서는 rPET 의무사용, 보증금제 확대, 투명페트병 단독 배출 등 순환경제 고도화가 진행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재사용 컵 반납률 30%대, 재활용 불량률 지속, 전자영수증 외면이 이어지는 ‘불일치’가 반복된다. 기술은 충분하지만 시민 참여가 따라오지 않으면 지속가능성은 완성되지 않는다.

이 간극을 시민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문제는 시민의 무관심이 아니라 참여할 수 있게 만드는 구조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것에 가깝다. 정부·기업의 설명은 시민에게 닿지 않고, 생활 속 실천을 안내하는 정보는 단편적이며,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 UX·UI 설계도 미흡하다. 참여 의지가 있는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자발성’이 아니라 참여를 가능하게 만드는 정보의 투명성과 접근성이다.

지난달 만난 전자영수증 업체 ㈜더리얼의 손종희 대표는 “소비자는 RE100이나 ESG 같은 용어를 몰라도, 내가 산 제품이 얼마나 탄소를 줄였는지 수치로 알 수 있으면 친환경 소비를 체감한다”며 “국민이 스스로 기후 행동의 주체가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시민이 행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정보’이다.

기술·정보·참여가 삼박자로 맞춰 움직일 때만 지속가능성은 완성된다. 시민은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못 하고 있을 뿐이다.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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