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통상과 안보 분야의 주요 협상 결과를 담은 ‘공동 팩트시트’가 공개됐다. 이 자료에는 한미 양국이 지난달 29일 한미 정상회담의 통상·안보 합의 사항을 설명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통상 부문에서는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기조가 크게 변함없이 반영됐고, 안보 부문에서는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민간 우라늄 농축·재처리 과정의 절차를 명문화하는 중요한 성과가 있었다.

조선 분야에서 미국 상선·함정을 한국에서 건조하도록 협의했다는 내용과 20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에 ‘상업적 합리성’이라는 조건을 달아 무제한적 부담을 피한 점도 의미가 있다. 자동차·반도체 등의 관세 문제를 경쟁국과 비교해 불리하지 않은 수준으로 정리한 만큼, 경제·안보 양면의 불확실성이 일정 부분 걷히게 됐다.

하지만 이번 협상은 냉정히 말해 우리가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입해 얻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팩트시트에는 대미 투자를 비롯해 미국이 얻게 될 이익이 구체적 액수로 제시돼 있다.

2000억 달러 대미 투자와 1500억 달러 조선 투자, 미국 군사장비 구매 250억 달러, 주한미군 지원 330억 달러, 한국 기업의 직접 투자 1500억 달러, 보잉기 구매 360억 달러까지 모두 명목화 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라 했지만, 고환율과 외환시장 불안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 막대한 자금이 가져올 부담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대미 투자가 집중되면서 국내 산업 투자 여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경청해야 한다.

협상 결과 중 가장 주목할 부분은 핵잠 확보와 원자력 협정 개정이다. 북한이 핵잠 개발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핵잠 건조는 동북아 안보 균형의 핵심 변수다. 민감한 우라늄 농축·재처리 권한 문제를 미국이 포괄적으로 지지한다고 명시한 것도 원전 산업의 숙원을 향한 중요한 진전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 의회의 승인과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 등 상당한 난제를 동반한다. 10년 이상 걸릴 수 있는 장기 과제로, 이 과정에서 미국 정권 교체에 따른 변수를 피하기 어렵다. 정부는 후속 협의를 안정적으로 추진할 전략을 면밀히 준비해야 한다.

관세 협상 역시 절반의 성과다. 반도체 관세를 ‘경쟁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조건’으로 묶어낸 것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큰 의미가 있다.

자동차 관세 인하와 외환시장 안정 조항의 명문화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철강 분야에서 50% 관세를 낮추지 못한 점은 여전히 부담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우리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남은 과제에 대해 추가 협상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번 협의 타결은 출발점일 뿐이다. 정부는 막대한 대미 투자와 협정 개정 과정에서 발생할 위험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협상을 경제 재도약과 안보 강화의 실질적 성과로 연결시켜야 한다. 국회 역시 초당적 협력을 통해 국가의 장기 전략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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