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협상서 빠져 업계 ‘충격’
관세 품목 1000개 확대 가능성
유럽까지 강화 예고에 리스크↑
정부, 긴급 지원책 5700억 투입

[천지일보=김정필 기자] 미국이 철강 관세율 50% 인하를 끝내 적용하지 않으면서 국내 철강업계가 내년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미 양국이 정상회담 후속조치로 작성한 팩트시트가 확정됐지만, 정작 철강은 협상 테이블에서 빠지며 산업계의 불안감이 더욱 증폭됐다.
16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양국은 지난 14일 관세·안보 협상 결과를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를 발표했다. 자동차 관세 15% 인하 등 일부 품목 조정은 포함됐지만, 철강은 ‘안보 핵심 품목’으로 분류돼 논의 대상에서 제외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 1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있어 구조적 논의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미국은 올해 6월 철강 관세를 일부 품목에 한해 50%까지 끌어올렸고, 현재는 407개의 철강 관련 품목에 개별 관세를 매기고 있다. 최근 미국 기업들로부터 약 700여개 품목에 대한 추가 관세 요청이 접수되면서, 전체 관세대상 품목이 1000개를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국내 철강업계는 이미 전년 대비 대미 수출이 크게 줄어 위기감이 높아진 상태다. 한국철강협회 집계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철강 수출량은 173만t, 21억 4000만 달러로 전년보다 각각 10.1% 감소했다. 특히 7월·8월은 전년 대비 수출량이 20~30%대 급감하며 관세 충격이 본격화된 모습이다.
기업별 관세 부담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이 포스코와 현대제철 자료를 분석한 결과, 두 회사가 올해 미국에 납부해야 할 관세는 총 4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월별로는 ▲3월 1150만 달러 ▲4월 1220만 달러 ▲5월 3330만 달러 ▲6월 4260만 달러 등으로, 관세율이 50%로 높아진 6월 이후 부담이 급격히 뛰었다. 3~5월 25% 관세 구간에서 5700만 달러를 냈다면, 이후 9040만 달러를 납부해 2100억원 상당의 비용이 부담으로 떠올랐다.

업계는 내년을 더 큰 위기의 원년으로 지목하고 있다. 미국이 관세 품목을 확대할 경우 수출량이 추가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여기에 유럽 시장마저 관세 및 규제 강화 움직임을 보이면서 ‘수출 이중 압박’이 올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이에 긴급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산업부는 철강·알루미늄·파생상품 업종에 대해 총 5700억원 규모의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중소·중견기업을 위한 이차보전사업을 신설하고, 무역협회를 통해 200억원 규모의 저리 융자자금을 지원한다. 또한 미국 입찰·계약 과정에서 발생하는 보증 수수료를 50% 감면하고, 공급망 강화를 위한 보증 상품도 새로 마련한다.
파생상품 관세 대응을 위한 ‘함량가치 산출·증빙 컨설팅’도 지원된다. 철강·알루미늄 파생상품의 경우 성분 구성에 따라 관세율이 달라지는데, 기업이 스스로 이를 산출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가 직접 컨설팅을 제공해 부담을 덜어준다는 계획이다.
중장기적으로는 탄소중립 체제를 대비한 ‘저탄소 전환’ 전략이 병행된다. 정부는 수소환원제철, 전기로 확대 등 친환경 공정 전환에 필요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K-스틸법’으로 불리는 철강산업 특별법 제정도 추진해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고 고부가 제품 중심 구조로의 전환을 지원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