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품목 1000개로 확대 예고
실행 땐 ‘수익성 악화 불가피’
미국·EU 잇단 철강 규제 강화

6월 4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철강 제품이 쌓여있는 모습. (출처: 뉴시스)
6월 4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철강 제품이 쌓여있는 모습.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김정필 기자] 미국이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를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한국 철강업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12일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최근 자국 기업들로부터 추가 관세 부과를 요청받은 95건, 700여개 품목에 대해 관세 적용 여부를 검토 중이다. 이들 품목은 자동차, 에너지, 포장재, 기계 부품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있으며 한국을 비롯한 주요 철강 수출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미 상무부는 제출 마감일인 지난달 21일을 기준으로, 60일 이내에 승인 여부를 확정할 방침이다. 만일 해당 요청이 모두 승인된다면 내년부터 관세 적용 품목은 기존 407개에서 1000개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 앞서 미국은 지난 8월 철강·알루미늄 407개 품목에 대해 추가 관세를 부과했으며, 당시에도 자국 기업들의 요청 대부분을 수용한 바 있다. 이 같은 전례를 감안할 때, 이번 700여개 품목 역시 상당수 승인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문제는 이번 조치가 특정 제품군에 국한되지 않고, 범위가 광범위하다는 점이다. 압축 금형, 식음료 캔용기, 자동차 휠 부품, 축전지 부품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철강·알루미늄 소재를 사용하는 다양한 제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주요 철강 수출 품목 상당수가 이에 해당돼, 사실상 ‘산업 전반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의 철강 산업은 수출 의존도가 높다. 2024년 기준 국내 철강 생산량의 약 40% 이상이 수출로 이어지고 있으며, 그중 미국은 일본, 중국과 함께 최대 수출 시장 중 하나다. 따라서 관세 확대는 수출 채널 위축과 수익성 악화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번 관세는 단순한 ‘가격 경쟁력 저하’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전망이다.

미국이 자국 중심의 생산체계 구축을 강화하면서, 철강 제품의 현지 생산 확대나 우방국 중심의 공급체계 전환이 가속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한국 철강사들의 미국 시장 접근성은 더욱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도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통상정책 강화를 이어가고 있다.

EU는 내년부터 수입산 철강제품에 대한 무관세 수입쿼터를 축소하고, 초과 물량에 대해서는 기존 25%에서 50%로 관세율을 두 배 인상하기로 했다. 이 중 일부 품목은 탄소배출량 기준에 따라 추가 비용이 부과될 가능성도 있어 사실상 ‘환경 규제형 관세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처럼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면서 한국 철강산업은 수출 다변화와 생산 효율성 제고라는 이중 과제에 직면했다.

이미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의 저가 제품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상황에서, 고율 관세가 장기화될 경우 경쟁력 약화는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정부는 양자 및 다자 협상 채널을 통해 관세 부담 완화를 추진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가시적인 진전은 없다.

실질적인 관세 완화 논의는 캐나다·멕시코 등 미주 주요 교역국과의 협상 결과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지연 속에서 산업계는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정책금융 확대, 수출보험 지원 강화, 전기요금 인하 등 직접적 비용 절감 방안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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