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고용법 개정안 연내 처리”
경영계 “기업 부담·청년 채용 축소”
청년 일자리 5만개 감소 전망도

[고양=뉴시스] 6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5 고양시 중장년 일자리 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채용공고를 살피고 있다. 2025.11.06.
[고양=뉴시스] 6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5 고양시 중장년 일자리 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채용공고를 살피고 있다. 2025.11.06.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정년 연장 논의가 올해를 두 달 남겨놓은 상황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공전하고 있다. 노동계는 ‘65세 법정 정년 연장’ 입법을 올해 안에 처리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경영계는 ‘퇴직 후 재고용’을 고수하며 맞서고 있다. 논의의 공은 사실상 정부·여당으로 넘어간 상황이다.

9일 노동계에 따르면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국회에 계류 중인 고령자고용법 개정안을 연내 처리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정년연장특별위원회를 운영하며 입법 의지를 밝혔지만, 실제 법안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양대 노총은 지난 5일 기자회견을 통해 “65세 법정 정년 연장 공약을 약속대로 이행해야 한다”며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며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고 압박했다. 노동계가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이미 노사 간 입장 차이가 명확히 드러났고, 추가 협의로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정년 연장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와 민주당 정년연장특위를 중심으로 논의돼 왔다. 그러나 지난해 비상계엄 사태 이후 경사노위의 사회적 대화가 사실상 중단됐다. 경사노위는 지난 5월 정년을 유지하되 재고용 의무를 부과하는 ‘계속고용의무제’ 공익위원안을 발표했다. 노동계는 이를 “경영계 요구만 반영한 안”이라며 거부했다.

[서울=뉴시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65세 법정 정년연장입법 연내통과 촉구 양대노총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1.05.
[서울=뉴시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65세 법정 정년연장입법 연내통과 촉구 양대노총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1.05.

민주당 특위 논의에서도 법정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노동계와 퇴직 후 재고용을 주장하는 경영계가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사측과 연내 합의는 어렵다고 보고, 입법을 주도할 국회·정부와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 역시 “더 이상 접점을 이루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여당이 노동계 요구대로 연내 입법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6일 민주노총과 만나 ‘연내 법제화’ 요구를 들었지만, 확답은 내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정년연장특위 간사인 김주영 의원실도 18일 예정된 법안심사소위와 관련해 “정년 연장 법안은 올라가기 어려울 것 같다”며 “노사 협의가 아직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쟁점은 단순히 ‘정년 연장 여부’가 아닌 어떤 방식의 정년 연장을 법안에 담을 것인가로 확장되고 있다. 경영계는 “법정 정년 연장은 기업 부담과 청년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며 임금체계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경제인협회 연구에 따르면 정년이 65세로 연장될 경우 기업 부담 인건비는 연간 30조 2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정년을 1년 연장할 경우 약 5만명 이상의 정규직 고령 근로자가 은퇴 대신 추가 근속하게 될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국가데이터처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1960~1964년생이 59세에서 60세로 넘어가는 시점에 상용근로자는 평균 5만 6000명 감소했다. 이는 법정 정년 60세 도달에 따른 대규모 퇴직 때문으로 나타났다. 정년이 61세로 연장되면 이 감소 구간이 1년 뒤로 이동해 기업은 최대 5만 6000명의 고령 상용근로자를 추가 고용해야 한다.

[고양=뉴시스] 6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5 고양시 중장년 일자리 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채용공고를 살피고 있다. 2025.11.06.
[고양=뉴시스] 6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5 고양시 중장년 일자리 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채용공고를 살피고 있다. 2025.11.06.

문제는 고령층 고용 유지가 늘어날수록 기업의 신규 채용 여력이 줄어들고, 이는 청년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정년 연장으로 고령 근로자 1명이 추가 고용될 때 청년 근로자 1명(0.4~1.5명)이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정년 1년 연장 시나리오’를 단순 적용하면 매년 약 5만개의 안정된 청년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청년층(15~29세) 취업자 수는 2023년과 2024년 각각 9만 8000명, 14만 4000명 감소하는 등 고용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20대 전체 일자리 중 새 일자리 비중도 1분기 기준 2022년부터 올해까지 51.4%→50.6%→48.0%→46.9%로 축소되는 흐름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정년 연장 자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커지고 있지만, 청년층 고용 충격을 완화할 보완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임금체계 개편, 재고용 제도 활용, 단계적 적용 등 충격을 분산한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하기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