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이 대통령경호처에 비화폰(암호화 전화) 서버 기록 삭제를 지시했다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특검팀이 부인 김건희 여사를 ‘김건희’라고 지칭하자 “뒤에 ‘여사’를 붙여야 한다”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백대현 부장판사)는 31일 윤 전 대통령의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에 대한 속행 공판을 열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첫 공판기일 이후 약 한 달 만에 다시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황색 서류봉투를 손에 든 채 재판부를 향해 허리 숙여 인사한 뒤 피고인석으로 향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비화폰 서버 기록 삭제 지시 의혹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졌다. 증인으로 출석한 김성훈 전 대통령경호처 차장은 “지난해 12월 7일 첫 통화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화폰 운영 규정을 물었고, 제가 잘 모르겠다고 하자 ‘그 규정대로 잘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두 번째 통화에서 비화폰 서버가 얼마 만에 한 번씩 삭제되는지 물어 ‘이틀 만에 삭제된다’고 답했고, 더 이상 말씀하지 않고 끊었다”고 말했다. 또 “‘수사받는 사람들의 비화폰을 그대로 놔두면 되겠느냐. 아무나 열어보는 게 비화폰이냐. 조치해야지’라고 말씀하셨다”고 증언했다.
김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과의 통화 후 김대경 전 대통령경호처 지원본부장에게 ‘보안 조치’를 지시했지만, 이는 접속 제한을 의미하는 조치였을 뿐 삭제 지시는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삭제 지시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김 전 본부장이 ‘삭제 지시’라는 단어를 써서 제가 보안 조치하라고 정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 전 대통령은 “비화폰을 처음 받고 경호처장에게 통화 내역이 어떻게 관리되냐고 물었더니 정권이 바뀔 때 전부 삭제하고 다음 정권에 넘겨준다고 했다”며 “이틀 만에 삭제되는 것도 아니고 실제 통화 내역이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경호 목적 때문에 상당 기간 (기록을) 갖고 있는다. 삭제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는 비화폰 기록 삭제 지시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취지의 발언으로 풀이된다.
한편 특검팀은 이날 재판에서 지난해 12월 김건희 여사와 김 전 차장이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를 공개했다. 특검은 “당시 영부인이던 김건희가 압수수색에 대해 피고인이 우려한다는 취지로 증인에게 말한 내용”이라며 “당시 피고인이 압수수색을 저지하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윤 전 대통령은 “제가 26년간 검찰에 있으면서 압수수색영장을 수없이 받아봤다”며 “여기(대통령실)는 군사보호구역이고, 청와대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고 해본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국군통수권자가 거주하는 지역을 (수사기관이) 막 들어와서 압수수색 한다는 건 우리나라 역사상 없었던 일”이라며 “그걸로 걱정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당시 수사기관의 영장 집행을 우려해 방해할 이유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또 윤 전 대통령은 “아무리 그만두고 나왔다고 해도 김건희가 뭐냐”며 “뒤에 ‘여사’를 붙이든 해야 한다”고 특검 측에 항의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