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전 세계 약 8500만 신자를 이끄는 영국 성공회가 역사적 변화를 택했다. 140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여성 캔터베리 대주교를 임명하면서다.
영국 왕실은 3일(현지시간) 런던 주교 사라 멀랠리(Sarah Mullally, 63)를 차기 캔터베리 대주교로 공식 임명했다고 밝혔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단순한 지역 교구 주교를 넘어 영국 성공회를 대표하고 전 세계 성공회 신자들을 이끄는 상징적인 자리로 여겨진다. 영국교회를 여성이 이끄는 것은 1534년 헨리 8세 국왕이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며 성공회를 세운 이후 491년만에 처음이다.
1962년 영국 와킹에서 태어난 사라 멀랠리는 16세에 기독교 신앙에 발을 들였다. 원래는 간호사였다. 런던의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며 영국 최고 간호책임자까지 오른 후 사목의 길로 들어섰다.
2002년 사제 서품을 받은 멀랠리는 런던 남부 교구에서 목회를 시작해 엑서터 교구 크레디튼의 보좌주교와 런던 주교를 거쳤다. 2019년부터는 왕실 예배당 학장을 겸임하며 교회와 사회 전반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동성 커플 축복을 지지하는 등 진보적 입장을 보여왔다.
이번 임명은 웰비 전 대주교가 아동 성 학대 의혹을 수십년간 은폐한 의혹으로 지난해 11월 사임한 이후 1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
멀랠리는 임명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생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연약한 이들을 돌보며 모두가 안전하고 존중받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고 밝혔다.
멀랠리는 대주교 선출을 위한 성직자단 선거와 법적 절차를 거쳐 2026년 3월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착좌식을 하고 공식적으로 대주교 직무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과제는 산적해있다. 동성 커플 축복 문제를 비롯해 영국·서구 교구와 아프리카·아시아 교구 간 신학적 균열을 다시 봉합할 수 있을지가 임기 최대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멀랠리의 진보적 노선에 반발하고 있는 성공회 보수 연합체 가프콘(GAFCON)은 “캔터베리의 지도권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성명을 내는 등 벌써부터 반발 조짐이 보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