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보삼 만해기념관장

“이분법적 사고, 사회 더 갈등으로 몰아
자유, 민주, 평화 개념 다시 성찰 해야
변화할 수 있는 힘 바로 ‘교육’에 있어”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전보삼 만해기념관장이 지난달 8일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에 위치한 만해기념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5.09.1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전보삼 만해기념관장이 지난달 8일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에 위치한 만해기념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5.09.19.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진정한 자유와 평화는 이해에서 비롯됩니다. 자기 주장만 옳다고 믿는 착각이 사회를 복잡하게 만들고 갈등을 키우는 것이죠. 그 착각을 깨뜨려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한평생 만해 한용운(1879~1944) 연구에 매진해온 전보삼 만해기념관장의 말이다. 시집 ‘님의 침묵’으로 잘 알려진 만해는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가이자 승려, 시인이었다. 그는 자유·평등·평화 실현이라는 대의를 위해 정의와 양심을 실천한 한국 근대사의 상징적 인물로 꼽힌다.

오늘날 사회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한국 사회가 절실히 갈망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경제적 풍요를 말하고 또 다른 이는 정치적 합의를 강조한다. 최근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에 있는 만해기념관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전 관장은 “민족의 자유와 평화를 노래했던 만해 정신을 오늘의 시대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1970년대부터 만해 연구와 자료 수집을 이어온 전 관장은 ‘걸어다니는 만해 박물관’으로도 불릴 만큼 국내 만해 연구의 권위자로 불린다. 신구대학교 교수와 ㈔한국박물관협회장, 경기도박물관 관장, 한국문학관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2018년에는 박물관·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철학박사이기도 한 그는 올해 75세로 평생을 만해 연구와 기념사업에 헌신해왔다.

그는 ‘조선불교유신론’ ‘불교대전’ ‘님의 침묵’ 등 만해의 주요 저술과 관련 자료를 집대성해 대중에 소개했고 수많은 연구 논문을 통해 만해 사상을 체계화했다. 저서 ‘한용운사상연구’ ‘정본 님의 침묵’을 비롯해 50여편의 논저를 집필했다. 1981년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 만해기념관을 처음 열고 1990년대에 현재의 장소인 남한산성으로 이전해 약 35년간 운영해오고 있다.

만해기념관에는 ‘님의 침묵’ 초간본을 비롯해 130여종의 판본, 영어·프랑스어 등으로 번역된 시집, 만해의 친필 유묵, ‘조선불교유신론’ 1962년 정부가 추서한 건국 공로 최고 훈장인 대한민국장, 학술논문 및 연구자료 등 전 관장이 직접 모은 3000여점이 소장돼 있다.

최근에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만해의 평화 사상을 알리는 등 만해 정신 전파에도 앞장서고 있다.

전보삼 만해기념관장이 지난 2일 경기 광주시 만해기념관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역사 강연을 하고 있다. IPYG가 주최하고 동행 캠페인이 주관한 이번 행사는 대한민국 역사를 통해 평화의 지혜와 정신을 되새기고 평화 실천 의지를 다지는 자리로 마련됐다. ⓒ천지일보 2025.08.02.
전보삼 만해기념관장이 지난 2일 경기 광주시 만해기념관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역사 강연을 하고 있다. IPYG가 주최하고 동행 캠페인이 주관한 이번 행사는 대한민국 역사를 통해 평화의 지혜와 정신을 되새기고 평화 실천 의지를 다지는 자리로 마련됐다. ⓒ천지일보 2025.08.02.

“요즘 우리 사회는 세대·지역·이념 간 갈등이 많습니다. 이를 치유하려면 자유와 민주, 평화라는 개념을 다시 성찰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옳다’ 아니면 ‘모두 틀렸다’는 이분법적 사고에 빠져 현실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역사 속 전쟁에서도 보듯 자기 평화를 위해 타인의 평화를 침해하는 것은 진정한 평화가 될 수 없습니다. 만해 사상은 자유에 기초한 평화를 강조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공감해야 할 시대적 정신입니다.”

전 관장의 만해 연구는 중·고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릉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책과 이야기 듣기를 좋아했다.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관음사에 다니며 전국 각지의 객승들과 삶과 죽음, 윤회 등 불교 철학을 이야기 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던 중학교 2학년 때, 한 스님이 건네준 ‘님의 침묵’을 읽고 만해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다.

고교 시절 그는 학생신문 ‘보리수’를 창간하고 작은 도서관을 혼자 운영했으며 법회를 주재하고 설법을 하기도 했다. 불교잡지 ‘법시’에 한용운 관련 글을 실을 만큼 그의 지식은 이미 수준이 높았다.

1968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오대산 월정사에 들어가 사고사에서 2년간 기거하며 만해 저술을 탐독하고 대학 진학을 준비했다. 하지만 당시 빈곤한 시대 현실 속에서 취업을 위해 주변의 권유로 공대 화학과로 진학했다. 군 복무 후 과학 교사로 재직하던 그는 다시 만해 연구에 뜻을 품었고 야간학교 교사로 일하며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친 뒤 전문대학 교수로 임용됐다. 이후 ‘화엄의 관점으로 본 만해사상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오랫동안 연구를 하며 큰 깨달음을 얻었던 부분으로 바로 ‘지조’를 지킨 만해의 태도를 언급했다. 

실제로 3.1운동 이후 일제는 민족 지도자들을 회유해 독립운동 세력을 약화시키려 했다. 독립선언서를 집필했던 최남선이 일제 기관인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고 오랜 동지 최린마저 매일신보 사장이 됐다. 이 소식을 들은 만해는 격렬히 분노하며 그들을 ‘이미 죽은 사람’으로 여기고 다시는 교류하지 않았다. 동지들이 하나둘 변절하는 상황에서도 만해는 끝내 꺾이지 않고 독립 의지를 지켰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전보삼 만해기념관장이 지난달 8일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에 위치한 만해기념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5.09.1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전보삼 만해기념관장이 지난달 8일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에 위치한 만해기념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5.09.19.

만해가 지조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전 관장은 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총칼 앞에서 굴복하거나 자기 이익 앞에서 변절한 독립운동가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만해는 끝까지 그러지 않았습니다. 저는 늘 그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만해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찾다 보면 결국 그가 얼마나 철저히 공부하고 얼마나 깊은 정신적 토대를 쌓았는가에 닿게 됩니다. 옛 사서부터 서양 철학까지, 유교·불교·기독교를 두루 공부한 아주 학식 높은 분이었습니다. 그런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지조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면서 그는 오늘날의 상황과도 비교했다.

“요즘 사람들에게 정의가 뭐냐, 성공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돈을 버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하지만 그게 과연 성공일까.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장관이나 국회의원이라 할지라도 존경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존경받는 사회를 만들려면 어떤 사람이 돼야 할까요. 만해의 지조와 정신, 참된 성공과 실패, 참된 정의의 정신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보여집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전보삼 만해기념관장이 지난달 8일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에 위치한 만해기념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5.09.1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전보삼 만해기념관장이 지난달 8일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에 위치한 만해기념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5.09.19.

만해가 옥중에서 집필한 ‘조선독립의 서’를 비롯한 여러 문헌을 보면 그가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추구한 선각자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독립신문’ 1919년 11월 4일 부록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글에서 만해는 “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자유가 없는 사람은 죽은 시체와 같고 평화를 잃은 자는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압박을 당하는 사람의 주위는 무덤으로 바뀌는 것이며 쟁탈을 일삼는 자의 주위는 지옥이 되는 것이니 세상의 가장 이상적인 행복의 바탕은 자유와 평화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 관장은 만해가 강조했던 자유와 평화는 “남의 평화를 해치지 않는 자유”라고 설명하며 이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가 새겨야 할 시대정신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자기만의 평화가 아니라 상대도 함께할 수 있는 평화여야 한다”며 “내 주장만의 자유와 평화는 착각일 뿐이다. 진짜 자유는 그 착각(편견)을 깨뜨릴 때 금강석처럼 단단하게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전보삼 만해기념관장이 지난달 8일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에 위치한 만해기념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5.09.1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전보삼 만해기념관장이 지난달 8일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에 위치한 만해기념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5.09.19.

만해가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사명의식에서 비롯된 헌신 덕분이었다. 전 관장은 국가 지원이 충분치 않은 현실을 솔직히 털어놓으면서도, 기념관을 지탱해온 힘 역시 만해 정신에서 배운 헌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정신이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집단 이기주의를 극복하는 데도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신이 행복해지고 싶다면 인생에서 고난을 덜 겪고 싶다면 허물을 짊어지지 않으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상대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겁니다. 그것이 진정한 길입니다.”

만해는 승려로서 종교계에서 높은 존경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오늘날 종교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는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며 종교계 역시 교육 중심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만해는 교육을 굉장히 강조했습니다. 인간은 배워야 비로소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배움의 자세가 있는 민족이어야만 미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불교에는 독각승(獨覺僧)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 혼자 깨달았다’는 사람들을 뜻하지요. 그런데 오늘날은 그런 독각승 무리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만 옳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아진 겁니다. 그러나 종교인은 원래 더 스승이 돼야 하고 더 모범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전 관장은 앞으로도 만해 정신을 알리고 확산시키는 데 앞장서고 싶다는 의지를 전했다. 이를 위해 만해기념관에서는 현재 유물 전시뿐 아니라 다채로운 교육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도 찾아오는 발길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전 관장은 설명했다. 특히 그는 만해기념관에서 매년 10월에 개최하는 ‘만해학교’를 앞으로 ‘만해 평화대학’으로 확대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만해기념관에서 전보삼 관장(사진 맨 왼쪽)이 관람객들에게 만해 한용운 선생의 저서와 생애 기록, 연구 자료 등 전시물을 소개하고 있는 모습. (제공: LG)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만해기념관에서 전보삼 관장(사진 맨 왼쪽)이 관람객들에게 만해 한용운 선생의 저서와 생애 기록, 연구 자료 등 전시물을 소개하고 있는 모습. (제공: LG)

“만해 정신을 통해 더 성숙한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깨달음을 많은 사람에게 나누는 것이 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른이든 아이든 누구나 와서 민족과 역사, 미래를 깊이 배우고 사유할 수 있는 전문 교육기관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싶습니다. 역사 속에서 신라의 화랑이 민족 정신을 길렀듯이 강한 훈련과 배움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세대를 길러내는 곳으로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만해기념관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했다.

“기념관은 제게 직업이 아닙니다. 배움이 있는 즐거운 놀이터라고 할까요. 불꽃처럼 화려하게 타올랐다가 꺼지는 곳이 아니라 불씨를 오래 간직하고 싶은 곳입니다. 저는 그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지켜내고 다음 세대에 전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의 가치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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