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세 출가 후 12년간 산속 수행
새벽 3시 목탁 치고 도량 돌기
불교 가르침 따라 미물도 배려
네 번 불공, 신도 영가 위한 기도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깨달음의 길을 가는 것은 아무리 해도 끝이 없습니다. 깨달아도 깨달아도 부족하죠. 눈을 감아야만 끝나는 게 깨달음입니다.”
경기 가평군 봉수리 운악산에 있는 성운사 주지 상월스님(62, 여)의 말이다. 14세 어린 나이에 출가해 산에서 12년간 공부한 스님은 ‘기(氣) 치유’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수행해왔다. 사람들의 신심을 치유하기 위해 일평생 승려의 길을 걸어왔다고 한다. 향후 ‘기 치유 카페’를 열어 사찰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한방 죽과 한방 음식을 제공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스님을 기자가 최근 만나봤다. 스님은 어떻게 수행을 하고 있을까. 스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상월스님의 하루는 매일 새벽 2시에 시작된다. 스님은 눈을 뜨면 한 시간가량 선(禪, 고요히 앉아서 참선함)을 한다. 3시가 되면 도량(道場, 불도를 닦기 위해 설정한 구역)을 돌 채비를 하고 법당으로 향한다. 이때 미물을 밟으면 살생(殺生)하는 것이 되므로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법당에서 삼배를 올린 후 목탁을 친다. 목탁을 처음부터 크게 치면 미물이 놀라 자기들끼리 뒤엉킬 수 있어 ‘올림 목탁’을 한다. 아주 작게 시작해 점점 크게 목탁을 친다. 이를 세 번 반복한 후 마지막에는 목탁을 크게 다섯 번 친다. 이 소리를 듣고 모든 미물과 사람이 잠에서 깨 기도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예불을 마친 뒤 법당에서 나와 오른발로 땅을 세 번 친다. 아직 잠이 덜 깨거나 아파서 못 간 미물이 남아있다면 피해가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고 난 다음에야 도량을 돌기 시작한다. 한 시간 걸려 가람(伽藍, 승려가 살면서 불도를 닦는 곳) 전체를 세바퀴 돈다.
스님은 도량을 도는 행위는 “도량을 깨끗이 정리하고 맑히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마음에 힘들었던 것을 비워내고 하루를 깨끗하고 청정하게 한다는 설명이다.
도량을 돈 후에는 새가 새벽에 일어나 나무의 먹이를 먹듯 아침 공양(供養, 사찰에서 하는 식사)을 한다. 오전 10시가 되면 사시 불공을 드리고, 오후 2시엔 미사 예불, 오후 5시엔 저녁 예불을 드린다. 새벽 도량 전 예불하는 것을 포함해 하루 네 번 불공을 드린다.
저녁 예불까지 마치면 개인 기도를 한다. 스님은 특히 돌아가신 영가(靈駕, 영혼의 다른 말)를 위해 극락왕생해서 잘 계시라는 환생 기도를 한다고 전했다. 주로 신도들의 영가를 위한 기도를 많이 한다.
저녁 기도까지 마친 스님은 밤 11시에 잠이 든다. 다음날 새벽 2시면 눈을 뜨니 하루 2~3시간만 자는 셈이다.
지난 17일 성운사에서 만난 상월스님은 이 같은 생활 속 수행을 14살부터 48년간 이어왔다고 한다.
수행을 수십년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은 ‘건강’이다. 스님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아프기 전에 미리 보약을 지어 먹는 등 자신의 몸을 관리한다고 말했다. “기도도 건강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같이 쉽지 않은 수행의 길을 택한 목적은 무엇일까. 스님은 중생들을 제도(濟度, 중생을 미혹한 세계에서 건져내 열반에 이르게 함)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고 밝혔다.
상월스님은 경상남도 통영 바닷가에서 태어났다. 3살 때부터 ‘혜안(慧眼, 모든 현상을 꿰뚫어 보는 지혜의 눈)통’이 열려 세상의 이치를 보게 된 스님은 14세에 출가해 은사 스님을 만났다. 100일간 승려 교육을 받은 후 은사 스님으로부터 속세에 남아있지 말고 산에 들어가 공부하라는 말을 듣고 지리산 3년, 계룡산 5년, 한라산 3년, 가야산 1년 총 12년을 산에서 수행했다.
한편 한국불교 내 출가자 수는 해마다 급격하게 줄고 있는 추세다. 대한불교조계종(조계종, 총무원장)이 지난해 3월 제220회 임시중앙종회에서 발표한 ‘1991년~2020년 사미·사미니 수계자 현황’에 따르면 2020년 수계자는 131명으로, 1999년 532명과 비교하면 20년 사이에 약 75%가 줄었다.
이 중에서 여성 출가자 수만 떼놓고 보면 하락세는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조계종 교육원에 따르면 사미니계(여성 출가자) 수계자는 1990년대까지 200명대를 유지하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며 100명대로 줄었다. 2010년 이후로는 60명대까지 급락했다.
이처럼 비구니(比丘尼, 여자 승려) 수가 점점 줄어드는 가운데 상월스님은 여성 출가자로서 자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스님은 “신라 시대 선덕여왕 당시 비구니의 계열은 높았다”며 “지금 다시 여성시대가 돌아오고 있다. 비구니가 큰일을 하고 세상에 많이 퍼지게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평생을 중생들의 깨달음을 위해 살아온 상월스님은 앞으로 신도와 일반인을 위한 복지를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스님은 “입적할 때까지 아픈 환자의 마음 문을 열어 치유해주고 조금이라도 편안할 수 있도록 돌봐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