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일보=이솜 기자] 수 세기 동안 스모는 일본 고유의 종교인 신도(神道)와 깊이 얽혀 있어 여성의 출입조차 엄격히 금지됐다. 신성한 도쿄 국기관(國技館) 스모 경기장 바닥은 여성에게 ‘불가침의 땅’이었으며 스모는 남성만의 경기로 여겨졌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 속에서 여성들은 조금씩 그 장벽을 허물고 있다.

프로 스모에서는 여전히 배제되고 있지만 현재 일본 전역에서 여성 약 600명이 아마추어 무대에서 활동 중이다. 지난 주말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세계 선수권 대회를 앞두고 올여름 훈련 중인 여성 선수들의 모습을 AP통신이 카메라에 담았다.

2016년 이후 도쿄에서 서쪽으로 약 600㎞ 떨어진 돗토리조호쿠 고등학교에는 스모를 배우고 싶어하는 소녀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곳은 일본 최대 규모의 여자 스모부가 있는 학교로 일주일 합숙 훈련을 통해 씨름의 기초와 정신을 배우고 있다.

이 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지도자로 활동하는 가쿠다 나나(24)는 훈련에 참가하는 소녀들의 수가 최근 몇 년 사이 두 배 이상 늘었다고 전했다. 가쿠다는 지역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도쿄에서 열린 전국 대회 무대에는 오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출전 자격이 남성 선수에게만 주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후배 선수들을 가르치며 여성 스모의 저변 확대에 앞장서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스모에서 여성은 오랫동안 ‘부정(不浄)’하다는 이유로 배제됐다. 심지어 2018년에는 한 지방 대회에서 심판이 쓰러졌을 때 응급 처치를 하려던 여성 의사에게도 “여성은 올라오지 말라”는 방송이 흘러나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남자 선수들이 상반신을 드러내고 전통 천인 마와시를 착용하는 반면 여성들은 몸에 딱 붙는 셔츠와 보디수트 위에 마와시를 두른다. 이는 문화적 겸손과 외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차별적 시선은 소녀들을 놀림거리로 만들고 종종 스모를 그만두게 하는 압박으로 작용한다.

“남녀 구분 없는 스모, 여자아이들이 자유롭게 훈련하고 성인이 돼서도 계속할 수 있는 세상. 나는 그런 세상을 바란다.” 2023년 세계 챔피언이자 직장인 선수 히사노 아이리(27)의 바람은 오늘도 스모판 위에서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