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 ‘SMR 개발’ 박차

중국·영국·일본도 원전 재확대

대선 앞두고 정책 대립 여전

“한국, SMR 기술 선점 시급”

울산 울주군 새울원자력발전소. (출처: 뉴시스)
울산 울주군 새울원자력발전소. (출처: 뉴시스)

핵심요약

◆전 세계 원전 확대 움직임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주요국이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 급증하는 전력 수요 대응을 위해 원전 확대 및 SMR(소형모듈원자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은 2050년까지 원전 설비용량을 3배로 늘릴 계획이며, 프랑스·중국·영국·일본도 대규모 신규 원전 건설과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 원전 정책 불확실성

한국은 정권 교체마다 원전 정책이 급변하며 정책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에서 윤석열 정부의 원전 확대 전환까지 반복되며, 21대 대선에서도 정당 간 원전 정책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전 세계적으로 ‘탈원전’ 기조가 빠르게 철회되고 있다. 탄소중립 실현과 에너지 안보,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해법으로 원자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미국, 프랑스, 영국, 중국 등 주요국은 원전을 전략적 에너지원으로 재정립하며 정책적·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원전 정책이 급변하면서 ‘정책 신뢰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 세계 ‘탈원전 철회’ 흐름 확산

미국은 2050년까지 원전 설비용량을 현재의 3배 수준인 300GW로 확대하는 로드맵을 추진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원전 르네상스’를 선언했고, 바이든 행정부도 원전의 탄소중립 기여와 전력 안정성에 주목해 정책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소형모듈원자로(SMR)의 2030년대 초 상용화를 목표로 실증 개발을 지원 중이며, 빅테크 기업들도 데이터센터 전력원으로 SMR 투자에 나서고 있다.

프랑스는 2050년까지 신규 원전 14기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는 2022년 발표한 6기에서 2배 이상 확대된 수치다. 마크롱 대통령은 “원자력은 프랑스의 에너지 독립과 산업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2035년까지 신규 원자로 150기를 건설해 원자력 발전 비중을 현재 5%에서 10%로 높이고, 2060년까지는 400GW 설비용량을 확보해 전체 발전량의 18%를 원전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영국도 ‘민간 원자력 로드맵 2050’을 통해 기존 6.8GW였던 설비용량 목표를 24GW로 상향했고, ‘대영원자력(GBN)’이라는 전담 기관을 설립해 민관 협력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GX 탈탄소 전원법’을 제정해 원전 운전기한을 사실상 연장했고, SMR 등 차세대 원전 기술개발을 위한 장기 로드맵도 수립했다. 한때 탈원전을 선언했던 스위스 역시 탄소중립 달성의 현실적 대안으로 원전을 재도입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정권마다 바뀌는 오락가락 정책

이처럼 세계가 원전을 중심으로 에너지 체계를 재편하는 가운데 한국은 정권 교체에 따라 에너지 정책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며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 등을 단행했다. 윤석열 정부는 다시 원전 확대 기조로 선회해 건설 중인 원전의 재개, 수출 확대, SMR 개발 등을 추진 중이다.

21대 대선을 앞두고도 정당 간 원전 정책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더불어민주당은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을 공약하며 원전에 대한 직접 언급은 삼갔다. 과거의 탈원전 기조에서 한발 물러났지만, 원전 확대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원전 비중 확대를 명확히 제시했다. 현재 건설 중인 6기 원전을 차질 없이 완공하고, SMR 상용화를 통해 안정적 전력원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제21대 대통령 선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출처: 뉴시스)
제21대 대통령 선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출처: 뉴시스)

이 같은 상황과 관련해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21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에너지 안보, 탄소중립, 산업경쟁력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원자력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은 지정학적 충격은 우리나라의 에너지 공급망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며 “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한국은 외부 변수에 좌우되지 않는 안정적인 기저전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원전은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핵심 수단”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원전을 단순한 전력 생산 수단이 아니라 국가 에너지 안보의 전략적 자산으로 재정립해야 한다”며 “재생에너지는 간헐성과 저장 문제로 전력 수요를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원전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대량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검증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원전 정책, 정권 따라 흔들리면 안 돼”

특히 원전 정책은 정권에 따라 흔들려서는 안 되며, 에너지 전략은 국가적 차원에서 일관되게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서울과학기술대 원자력공학과 관계자는 “원전은 설계부터 가동까지 수십 년이 걸리는 사업”이라며 “정권마다 정책이 바뀌면 기업 투자나 수출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 역시 “탈원전 기조를 수정하고, 에너지 믹스 전략에 원전을 적극 포함시켜야 한다”며, 특히 차세대 원전인 소형모듈원자로(SMR)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 영국 등 주요국이 앞다퉈 SMR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며 “한국도 기술적 우위를 선점할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이어 “정부는 원전 기술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와 함께 해외 원전 수출 확대를 위한 외교적·제도적 지원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책 혼선은 산업계에도 부담이다. 원자력 생태계의 주요 구성원인 기자재 업체와 중소 협력사는 정부의 신호에 따라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한수원을 비롯한 주력 공기업이 중장기 발주를 확정하지 못하면 관련 산업의 성장도 정체될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원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소통의 중요성도 짚었다. 또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투명한 정보 공개와 국민과의 지속적인 소통이 중요하다”며 “지역 주민과의 상생 전략, 안전성 확보, 폐기물 관리 등 원전의 전 주기적 정책 설계가 뒷받침돼야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력 수급 불안도 현실적인 우려다. AI 산업, 데이터센터, 전기차 확산 등으로 인해 국내 전력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과 불안정한 공급 구조를 보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원전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울원전 6호기. (출처: 연합뉴스)
한울원전 6호기. (출처: 연합뉴스)

◆정권 무관한 일관된 에너지 전략 시급

특히 원전산업 발전을 위해선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도 병행돼야 한다. 현재 임시저장시설의 포화가 임박한 가운데 영구 저장시설은 아직 부지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지역 반발을 해소하고 주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투명한 절차와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원전 관련 논의는 기술 개발이나 수출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공론화 절차, 주민 보상, 지역 상생 방안 등 제도적 기반도 함께 정비돼야 실질적인 정책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논쟁을 거듭하는 사이, 정책 지연으로 피해를 입는 것은 국민과 산업계”라고 지적한다.

국내 전력의 약 30%를 담당하는 원자력은 단순한 발전 수단을 넘어 에너지 안보와 산업경쟁력의 핵심 기반이다. 탄소중립 실현과 AI 산업 확장 등 미래 과제에 대응하려면 정권과 무관한 일관된 에너지 전략 수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차기 정부가 이 같은 방향성을 중심으로 원전 정책을 설계한다면, 단기적인 에너지 위기 대응은 물론 장기적인 지속가능성까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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