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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칠기의 빛깔에 반해 시작된 옻칠
‘작은 골짜기’ 수곡(守谷) 호를 받다

 

“나전칠기 전통, 소통하며 알려져야”

국빈 선물, 협업 등으로 널리 알려

 

달항아리와 나전칠기의 새로운 만남

젊은 작가들, 미래를 향한 나전칠기

[천지일보=이지예 기자] 어떤 작품과 한눈에 반해 그 사물과 소통이 되어본 적이 있는가?

손대현 장인에게는 그런 운이 따른 것 같다. 15세 때 나전칠기에 마음이 뺏겨버린 이후, 일흔을 넘긴 지금까지 작품을 만들며 늘 행복했다고 고백한다. 다음 작품을 생각하면 늘 설레었고, 다음 작품을 생각하면 늘 설레었고, 밤이 지루해 아침이 기다려졌다. 수십 차례 반복되는 옻칠 과정을 거치며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데 최소 6개월이 걸린다. 그간 만든 작품만 수백 점에 이를 텐데, 더없이 온화한 그의 모습을 보면 작품 하나하나를 아름답게 빚고 소통하며 긴 세월 본인의 마음도 닦였나 보다.

◆15세 소년, 나전칠기와 만나다

손 장인과 나전칠기와의 인연은 열다섯 살에 무역회사에서 잔심부름 일을 하던 중 같은 건물에 있던 나전칠기 공방에서 포장되던 나전칠기를 보게 된 순간부터 시작됐다. 그 빛깔이 마음에 와닿았고 꼭 한번 배워보고 싶었다. 그곳에서 귀동냥으로 칠을 배우기 시작했으나 점차 전통 옻칠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그는 용기를 내어 당시 옻칠의 대가로 알려진 민종태 선생을 찾아갔다.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찾아오는 그의 모습이 대견해서인지 6개월 만에 그곳의 문하생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새로 배우게 된 전통 옻칠은 재료부터 기법까지 알고 있던 화학적 칠 과정과 완전히 달랐다.

‘나전칠기(螺鈿漆器)’는 조개껍질을 가공해 문양을 만드는 공예와 옻으로 칠하는 칠기의 조합으로 이뤄진다. 옻나무에서 옻을 채취하고, 기물의 틀을 만드는 백골 작업 후 그 위에 생 옻을 바른다. 그 위에 다시 옻나무 수액과 찹쌀 풀을 섞어 만든 접착제로 ‘호칠’을 하고, 나무의 변형을 막기 위해 삼베를 덮어 바른다. 삼베 위에 절반 정도 옻칠이 진행됐을 때 나전을 잘라 붙이고 옻으로 다시 나전을 메꾸고 갈아내고 또 칠한다. 덧입히는 옻칠만 36번이다. 옻칠 기법은 중국과 일본 동아시아 삼국이 다 사용했지만, 조개껍질을 활용한 나전칠기 기법은 한국이 독보적이다.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때 나전칠기는 전성기를 맞았다. 나전은 고려 시대부터 전 세계적인 명품으로 통했다.

묵묵히 한 길을 걸은 끝에 6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는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리는 나전칠기 장인이 되었다. 1991년 제1호 나전칠기 명장이자, 1999년 서울시 문형문화재 제1호 칠장이 되었다. 자그마한 골짜기를 지킨다는 뜻을 가진 그의 호 수곡(守谷)은 스승인 민종태 장인에게 물려받았다. 민종태 장인은 조선조 나전칠기 마지막 장인이었던 1대 전성규 장인에게 수곡 호를 물려받았다. 천년을 이어온 예술적 가치를 지키는 동시에 시대와 소통하며 흘러가야 한다는 스승의 뜻이 담겼다. 나전칠기를 하는 사람은 많지만, 손 장인의 작품은 무엇이 다를까? “나무의 열매가 익었는데 그중에서 유독 눈이 가는 탐스러운 열매가 하나 보일 수 있겠죠. 그 열매를 맺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해 온 결과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손대현 장인이 다양한 나전칠기 기법으로 탄생시킨 건칠 달항아리. (사진=손대현 제공) ⓒ천지일보 2025.03.25.
손대현 장인이 다양한 나전칠기 기법으로 탄생시킨 건칠 달항아리. (사진=손대현 제공) ⓒ천지일보 2025.03.25.

◆시대와 소통하는 나전칠기가 되다

나전칠기라 하면 할머니 장롱으로 기억되는 번쩍번쩍한 자개장이 떠오를 수 있다. 나전칠기는 천연의 재료로 장인의 손에서 수많은 시간을 들여 탄생한 만큼 가치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과거 왕과 왕비 귀족 즉 상위 1%를 위한 전유물이었다는 태생적 한계도 있다. 지금도 나전칠기 작품은 값이 비싸다.

화학 칠과 전통 옻칠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손 장인은 ‘거울에 비치는 모습’과 ‘호수에 비치는 모습’의 차이로 설명한다. 옻칠은 깊이감 있는 은은함을 지녔고, 바라보면 눈이 편안해진다. 손 장인이 만든 자개장을 보면 올드하다는 편견은 단번에 날아가고 고운데 화려하며 현대적인 느낌마저 든다. 검은색 외에도 천연 안료에 옻을 게워 다양하게 색을 표현한다. 마치 여인의 한복처럼 색이 곱다. 문양도 사군자, 나비, 포도, 계란 난각 등 다양하다. 이들과 함께하는 당초 문양은 나전칠기 전통 넝쿨 패턴이다. 특히 손 장인의 작품 속을 날아다니는 나비 당초 문양은 그의 작품임을 알 수 있는 시그니처로 통한다. 자연을 이롭게 하는 나비의 훌륭한 부분 때문에 나비 문양을 특별히 좋아했다고 한다.

손 장인은 나전칠기를 알리는 데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더 널리 알리고자 해외 초청 전시는 꼭 챙겨서 진행하는 편이다. 그의 작품은 여러 차례 국가 정상들에게 선물로 건네졌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해외 메인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삼성, 루이뷔통, BMW, 까르띠에 등 기업 제품과 콜라보를 하는 새로운 시도도 이어왔다. 젊은 층의 관심을 높일 수 있게 쿠키런 게임과 협업에 나서기도 했다. 게임 속 캐릭터 다크카카오 쿠키가 왕국을 지키기 위해 험난한 싸움을 지속하는 ‘결의’와 나전칠기에 60년간 매진해 온 자신의 모습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당시 눈높이 소감도 재미있다.

나전칠기 작품 감상 포인트는 무엇일까? “작품을 처음 보실 때 와닿는 느낌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작품이 눈에 머물지 않고 지나간다면 그 작품은 사랑받지 못하는 어떤 태생적인 문제가 있다고 봐요. 시대와 동떨어진 작품은 눈길이 머물지 않고 지나쳐 버립니다. 작품이란 건 그 모습이 보는 이와 소통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작가들은 사랑받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손대현 장인이 모바일 RPG ‘쿠키런: 킹덤’과 진행한 협업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손대현 제공) ⓒ천지일보 2025.03.25.
손대현 장인이 모바일 RPG ‘쿠키런: 킹덤’과 진행한 협업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손대현 제공) ⓒ천지일보 2025.03.25.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 건칠 달항아리로 탄생하다

5~6년 전부터 그는 달항아리를 주요 오브제로 삼고 있다. 형태를 봐선 달항아리 위에 나전칠기를 입혔나보다 생각할 수 있지만, 나전칠기의 ‘건칠’ 기법을 접목했다. 진흙으로 거푸집을 만들어 석고를 바른 후 삼베를 덮고 그 위에 천연 접착제와 옻칠을 여러 겹 바른 후 나전을 오려 놓아 옻칠로 마감한다. 작업이 끝나면 안의 진흙은 털어버린다. 삼베와 옻칠로만 이뤄진 달항아리가 탄생하는 것이다. 건칠은 옻칠 기술 중 가장 어렵고 뛰어난 기술이지만, 깨지지 않고 어떤 형태든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의 건칠 달항아리는 완전히 다른 재료로 만들어진 낯설지만 매우 색다른 시도라고 평가된다.

달항아리와의 첫 만남은 그의 작품에 터닝포인트가 됐다. 인사동에서 보게 된 달항아리의 담백한 색깔과 둥글고 부드러운 형태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왔다. 그때부터 달항아리는 그가 오랜 시간 쌓아온 나전칠기 기법과 예술적 철학을 담아내는 새로운 캠퍼스가 되었다.

달항아리에서 오색 찬란한 빛깔을 뿜어내는 나전칠기를 올해도 5월과 9월, 12월에 예정된 초대전을 통해 볼 수 있다. 장인의 솜씨를 누가 물려받을까 궁금해진다. 그는 칠장 조교가 돼 옻칠 대를 잇는 친아들을 비롯해 제자들과 일반인들에게 이르기까지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 출강하며 일반인들에게도 옻칠 기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바람 대로 젊은 제자들이 새로운 감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나전칠기와 접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가길 기대해 본다.

<수곡 손대현 이력>

-수곡공방 대표
-한국전통공예건출학교 서울대학교 출강
-서울시 무형유산 제1호 장인 
-문화재 수리 기능사 지정 제1622호 
-대한민국 나전칠기 명장 제1호

(촬영: 김인우 기자)
(글·편집: 이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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