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관광객들에 북적

최대 이슈 속 겉으로는 평온

“민감한 사항 인터뷰 어려워”

 

세계 운송 4% 담당 중요 운하

수로 양 끝 홍콩계 항구가 문제

中, 선박 데이터 접근할까 우려

 

파나마 결국 일대일로 탈퇴

홍콩 회사 계약 해지 보도 나와

“中 관계 강화 국가들에 경고”

파나마 운하에 한 선박이 들어오고 있다. ⓒ천지일보 2025.02.04.
파나마 운하에 한 선박이 들어오고 있다. ⓒ천지일보 2025.02.04.

[천지일보=이솜 기자] “베네수엘라에서 오신 분들 환영합니다” “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파나마 운하를 보기 위해 파나마 시티에서 12㎞ 떨어진 미라플로레스 수문에 갔다. 이날 오후 2시경 선적이 들어오자 한 가이드가 수많은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을 맞이했다.

운하 방문자 센터에 입장하게 되면 운하의 역사를 설명하는 영화를 본 후 선적이 운하에 들어오는 모습과 함께 수문이 작동하는 방식 등에 대해 가이드의 설명을 듣게 된다. 이날 선적이 운하에 들어오는 시간이 되자 수많은 관광객으로 인해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가이드가 콜롬비아, 과테말라, 멕시코 등 많은 중남미 국가들과 파나마의 소위 ‘올드머니’ 유대인, 또 미국인 등을 부르자 이들은 환호로 답했다. 그러나 가이드는 아시아 국가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 운하 투어에는 중국인 가족과 본지 기자를 포함한 아시아 관광객도 눈에 띄었으나 그는 중국이나 한국 등의 나라는 호명하지 않았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운하와 중국과의 연관성을 주장하며 운하를 되찾겠다고 한 파장을 의식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겉으로 파나마 운하는 전과같이 평온했다. 그러나 확실히 운하는 폭풍의 눈 가운데 있었다.

전에 운하에서 일하던 한 직원은 인터뷰 요청에 “현재 이 사안은 매우 민감해서 다들 입장 밝히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공식 성명이 아니고서야 일반 직원들은 운하와 관련해서 입을 열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과 파나마,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이 중대한 운하의 주인이 바뀔지 여부를 지켜보고 있다. 다음날 파나마 시티에 있는 ‘파나마-중국 150주년 기념비’가 있는 장소에서는 파나마와 중국과의 관계를 취재하는 미국 폭스뉴스 취재진도 보였다. 기자가 귀국 중 경유한 미국 JFK 공항에서는 입국 심사 중 직업을 밝히자 직원이 “그래서 파나마에 방문했구나”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기도 했다.

이틀 후인 지난 2일 마코 루비오 미국 신임 국무장관은 첫 해외 방문국으로 파나마와 이곳 운하를 방문했다. 이유는 호세 라울 물리노 대통령과 만나 “파나마 운하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제거하지 않으면 필요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왜 트럼프 대통령은 파나마 운하를 ‘되찾겠다’고 하는 것일까. 파나마 운하는 어떤 역할을 가지고 있을까. 중국은 정말 파나마 운하와 관계가 있을까.

지난 1일(현지시간) 파나마 운하의 태평양 측 입구 근처에 위치한 발보아 항구. 홍콩계 허친슨 포츠가 운영하는 시설 중 하나다. ⓒ천지일보 2025.02.10.
지난 1일(현지시간) 파나마 운하의 태평양 측 입구 근처에 위치한 발보아 항구. 홍콩계 허친슨 포츠가 운영하는 시설 중 하나다. ⓒ천지일보 2025.02.10.

◆美 최대 이용 운하 항구를 中 기업 운영

트럼프 대통령이 파나마 운하의 통제권을 원하는 이유는 운하의 역사와 수로의 양 끝 입·출구에서 찾을 수 있다.

매일 수십 척의 화물선이 태평양 입구 근처 항구의 크레인을 지나간다. 약 8시간 후 이들은 대서양으로 나가면서 컨테이너가 쌓인 또 다른 터미널을 지나 표류한다. 이 항구는 홍콩 CK 허친스 홀딩스 자회사인 허치슨 포츠가 운영한다.

바로 이 부분이 트럼프 정부가 지적하는 문제의 핵심이다. 허치슨 포츠는 1997년부터 파나마 운하에 관여해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30년 동안 운하 주변에 건설된 중국 인프라를 국가 안보 위협으로 보고 있다. 파나마 5개 항구 중 허치슨의 항구(발보아와 크리스토발)가 가장 크다. 파나마 해사청에 따르면 지난해 허치슨의 항구는 파나마 운하를 통과한 화물 컨테이너의 39%를 운반하는 선박에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렇다면 왜 홍콩 기업이 ‘중국 기업’으로 간주되는 것일까. 이는 2020년 홍콩에서 민주화 시위가 발생한 후 중국 정부가 홍콩에 국가 안보법을 부과하면서 홍콩의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도시 통제의 고삐를 쥔 중국 정부는 홍콩의 민간 기업과 개인에게 국가 정책을 지원하도록 요구할 수 있게 됐다.

트럼프 정부에서만 이런 상황을 주시하진 않았다. 지난해 3월 미국남부사령부 로라 리차드슨 장군이 미국 의회에서 발표한 보고서는 이를 증명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중남미 지역에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에 대해 설명하는 이 보고서에서는 “파나마에서는 중국이 통제하는 국영기업(SOE)이 세계적 전략적 요충지인 파나마 운하와 관련된 프로젝트에 계속 입찰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리차드슨은 2021년 조 바이든 당시 대통령이 남부사령부 책임자로 임명한 장군이다.

(출처: 연합뉴스)
(출처: 연합뉴스)

이 보고서에서와 같이 미국은 파나마 운하를 ‘세계적 전략적 요충지’라고 평가한다. 실제 파나마 운하는 전 세계 해상 운송의 중요한 초석이다. 세계 무역의 약 4%가 이 운하를 통과한다. 파나마 운하는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가기 위해 남미 최남단까지 갈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최대 1만 4816㎞ 항해 거리를 단축하는 이 운하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가장 빠른 경로가 되면서 국제적인 교차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운하는 미주 동부 및 서부 해안의 항구 간 거리를 단축해 보다 효율적인 무역과 운송을 촉진한다. 이에 따라 통과 선박의 약 72%가 미국 항구를 오가는 선박이며 우리나라도 작년 기준 파나마 운하 화물 운송량 4위를 차지했다.

중국 정부가 파나마 운하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거나 군사 활동을 이곳에서 펼치고 있다는 결정적 증거는 없다. 다만 세계에서 미국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운하의 최대 항구를 중국 기업이 운영하는 만큼 이들이 통과 선박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이 같은 사태를 부른 셈이다.

지난 1일 파나마-중국 우호 기념비에서 보이는 아메리칸브리지. 이 다리는 운하를 관통한다. ⓒ천지일보 2025.02.10.
지난 1일 파나마-중국 우호 기념비에서 보이는 아메리칸브리지. 이 다리는 운하를 관통한다. ⓒ천지일보 2025.02.10.

◆중남미에 커지는 중국 영향력

더불어 미국의 파나마 운하의 ‘소유’ 주장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처음 파나마 운하 건설을 시도한 나라는 프랑스였다. 1881년 운하 건설을 시작한 프랑스는 엔지니어링 문제와 높은 노동자 사망률로 인해 1889년 공사를 중단했다. 미국은 이 프로젝트를 1904년에 인수해 결국 1914년 운하를 개통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운하 계약을 타결하지 못한 콜롬비아에서 파나마를 분리·독립하는 데 지원하기도 했다. 미국은 1977년 협정에 따라 파나마에 인계될 때까지 운하를 통제했다.

문제는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이 1977년 파나마와 맺은 ‘파나마 운하 운영과 영구 중립에 관한 조약’이다. 이 조약에 따라 1999년 미국이 운하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했다. 조약의 핵심은 두 가지다. ‘파나마 운하가 영구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하며 ‘통행료는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공평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트럼프 정부는 현재 이 두 가지가 지켜지지 않고 있으니 자국이 지은 운하를 돌려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출처: 연합뉴스)
(출처: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주장에는 자국 턱밑에서 영향력을 급격히 키우는 중국을 억제하려는 의도도 있다. 카운슬 온 포린릴레이션스(CFR) 중남미 연구원 윌 프리먼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파나마를 본보기로 삼아 다른 지역 지도자들이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대담한 조치를 취하기 전 두 번 생각하게 하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파나마는 2017년 중국 일대일로(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이니셔티브에 가입한 최초의 중남미 국가였다. 또한 파나마에는 중국인 약 20만명이 거주해 중미에서 가장 큰 중국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다. 중국은 파나마를 넘어 중남미 전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미국남부사령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남미 최대 교역국이자 미주 전체에서는 미국에 이은 2위 교역국으로 자리매김했다. 보고서는 “중국은 자국을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에 대한 대안으로 내세우며 개발도상국들의 필요에 더 부합하는 파트너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31일 파나마 운하에서 선박이 이동하는 모습을 보러 온 관광객들. ⓒ천지일보 2025.02.04.
지난달 31일 파나마 운하에서 선박이 이동하는 모습을 보러 온 관광객들. ⓒ천지일보 2025.02.04.

◆파나마 “주권 모욕”… 美와 협상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파나마는 난감한 입장이다.

국가적 정체성의 상징이자 부의 원천인 운하나 최대 교역국 중 하나인 중국과의 관계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셈이다. 지난달 미주투자공사(IDB Invest)에 따르면 운하는 직간접 및 유발 효과를 모두 고려할 때 연간 총 국내총생산(GDP)에 7.7%를 기여하고 연간 총 수출 15.9%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운하의 활동으로 인해 2030년 파나마의 GDP는 2022년에 비해 3.45%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도우파 정치인인 호세 라울 물리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파나마 주권에 대한 모욕이라며 거부하면서도 미국과의 협상에 적극 나서는 양상이다. 이에 대한 결과로 먼저 그는 지난 6일 중국의 일대일로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으나 파나마 정부가 항구를 운영하는 홍콩계 회사와의 계약 해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파나마의 변호사 두 명은 최근 대법원에 이 홍콩계 회사가 항구를 운영할 수 있는 양허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드려 계약이 취소된다면 파나마는 정치적 동기에 의한 계약 취소라는 이유로 국제 중재에 회부될 가능성이 높다.

홍콩계 회사들이 항구 운영에서 손을 뗀다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파나마 운하를 탈환하겠다는 의지가 꺾일지도 미지수다.

파나마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카를로스(31, 가명)는 운하에서 “미국이 우리의 주권을 위협하고 있어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며 “우리 대통령이 미국과 공정한 합의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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