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률 역대 최고… 무주택자 위한 취지 ‘무색’
실수요 중심 개편 추진… 유주택자 제한 가능성 커져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 수단으로 변질된 ‘무순위 청약제도(줍줍)’가 정부의 개편 대상이 됐다. 당초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였지만, 최근 ‘로또 청약’으로 불리며 극심한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실수요자 보호 취지가 무색해졌다.
8일 정부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이달 중 무순위 청약제도 개선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지난해 무순위 청약이 투기성 청약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지속된 만큼, 유주택자의 청약 참여를 제한하거나, 지역 제한을 다시 도입하는 등의 규제 강화 방안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역대급 경쟁률’… 무순위 청약, 투기 수단으로 변질
지난해 무순위 청약 경쟁률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서울 동작구 ‘이수 푸르지오 더 프레티움’ 전용면적 59㎡E 타입 1가구 모집에 14만 3283명이 신청했다. 해당 단지는 사당3구역을 재건축해 지어진 514가구 규모의 아파트로, 2021년 6월 입주를 시작했지만 일부 가구의 계약이 취소되면서 무순위 청약이 진행됐다. 분양가는 7억 9219만원이었으나, 입주 이후 시세가 두 배 가까이 상승해 지난해 8월에는 16억원에 거래되면서 신고가를 경신했다.
무순위 청약 과열은 특정 단지에 국한되지 않았다. 최근 5년간 무순위 청약 경쟁률 상위 10곳 중 9곳이 지난해 진행된 청약이었다. 특히 지난해 7월 경기 화성 ‘동탄역 롯데캐슬’ 무순위 청약에서는 단 1가구 모집에 294만 4780명이 몰려 사상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청약홈 사이트에는 접속자가 한꺼번에 몰려 대기자가 250만명을 넘었고, 예상 대기 시간이 694시간까지 늘어나면서 사이트가 마비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결국 청약 접수 기간이 하루 연장되는 이례적인 조치가 취해졌다.
이 밖에도 ▲서울 동작구 ‘흑석 자이(82만 9801대1)’ ▲세종 어진동 ‘세종 린 스트라우스(43만 7995대1)’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33만 7818대1)’ ▲경기 하남 ‘감일 푸르지오 마크베르(28만 8750대1)’ 등 주요 단지에서 수십만 명이 청약을 접수하며 ‘줍줍 열풍’이 이어졌다.

무순위 청약 과열은 정부의 청약 규제 완화 이후 더욱 심화됐다. 2021년 5월 정부는 무순위 청약 자격을 ‘해당 지역 거주 무주택자’로 제한했다. 하지만 2022년 하반기부터 금리 인상과 미분양 물량 증가로 시장이 얼어붙자, 정부는 지난해 3월 무순위 청약 자격을 대폭 완화해 거주 지역과 주택 보유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청약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 인해 실수요자보다는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이 대거 몰리면서 청약 시장이 급격히 과열됐다.
◆정부, 무순위 청약 개편 착수… 유주택자 제한 가능성 커져
정부가 추진하는 개편안에는 유주택자의 청약 참여 제한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주택을 소유했는지 여부뿐만 아니라, 거주 지역과 청약 과열 지역인지 여부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선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일부 전문가들은 분양가를 주변 시세의 80~90% 수준으로 조정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무순위 청약 물량은 대체로 시세보다 낮은 분양가로 공급되기 때문에 시세 차익을 노린 청약 신청이 몰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분양가를 시장 가격에 맞춰 조정하거나, 실수요자 우선 공급 조항을 신설하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부가 발표할 무순위 청약 개편안에는 청약 자격 요건 강화가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주택자의 청약 제한이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올해부터 일정 가격 이하의 비아파트(연립·다세대주택) 보유자는 무주택자로 간주하기로 한 만큼, 이들이 무순위 청약에 참여할 수 있을지 여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