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
블록버스터 잔치는 옛말이 돼버렸다. 올해 중급 코믹 영화가 구원투수로 나선 여름 성수기는 과거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지배했던 분위기와는 많이 달라 보였다.
히트 한국 영화의 부재로 대박이 난 작품들은 지난해 8월 대비 18.6% 감소했다. 아울러 지난달은 한국 영화 관객 수가 올해 들어 가장 적었다. 영화산업 결산 자료에 따르면 10월 한국 영화 관객 수는 307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8.6%(123만명) 감소했다.
흥행 성적이 저조하고 제작 환경은 척박해지면서 모든 영화인이 고민하고 있다. 올해 투자 유치한 한국 상업영화는 20편에 불과하다. 코로나 후에 개봉한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영화산업 생태계가 위험에 처해 있다.
올해 상반기 개봉작 중 200만명 이상 동원한 영화는 2편뿐이다. 기대를 모았던 ‘외계+인 2부’는 143만명 동원에 그쳤고, ‘노량: 죽음의 바다’는 457만명 관객을 동원하며 젊은 관객층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
현재 영화관 상황도 좋지 않다. 수십억원을 들여 제작한 영화들이 10일을 버티지 못하고 간판을 내렸다. 십수년 전은 한국 영화계의 부흥기였다. 관객 수도 매년 증가하며 다양한 장르의 상업영화들이 사랑받았다. 2013년 이후 극장 관객 수는 2억명을 넘어서며 매출액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시절도 있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100억원 이상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제작과 개봉은 쉽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안전을 추구하며 70억원 미만의 중예산 영화로 불리는 중급 규모 영화들의 진입이 덜 부담돼 보인다.
OTT 시대 속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년에 ‘중박 영화’들이 대거 등장해야 한다. 올해 성공한 영화 ‘파일럿’ ‘탈주’ ‘핸섬가이즈’ 등 몇 편의 중박 영화들이 위기에 처한 영화산업을 지탱하면서 그나마 버텼다.
대형 영화들의 잇따른 부진은 중소 영화들의 개봉에도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 비대면 영향으로 OTT 우세가 굳어지고 영화관 관람료의 상승으로 관객들의 발길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넷플릭스의 가입자 수는 2020년 470만명에서 올해 1170만명까지 증가했다. 100만명 이하였던 쿠팡플레이의 가입자 수도 800만명으로 늘어났다. 현저히 줄어든 영화관 관객 수와 대폭 늘어난 OTT 가입자 수는 현 영상미디어 트렌드를 여실히 보여준다.
100억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침체기를 겪는 상황 속에서 웰메이드 중급 규모 영화들의 질주는 침체한 극장가를 다시 되살릴 수 있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작품성 있는 소형 영화, 독립영화 등 다양한 작품들이 내년에 쏟아져 나와야 한다.
흥행만을 노리고 과거 인기였던 소재를 되풀이하거나 아이디어 없이 시리즈 속편 제작에 집중한다면 젊은 관객들은 오히려 더 OTT에 집중할지도 모른다.
내년에는 허리를 잘 받쳐줄 수 있는 탄탄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중소 영화들의 흥행이 이어져야 한국 영화산업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글로벌 OTT 공룡들은 더욱 거대해지고 영화관은 더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내년에는 급격한 침체기를 맞은 한국 영화산업의 위기 상황 돌파를 위한 분위기 전환과 탄탄하고 견고한 중급 규모 영화들이 쏟아지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