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카드사 순이익 2.2조원
카드론 등 대출성자산 늘어
카드 대출 연체율 3.1% 달해
연말 가맹점 수수료 재산정
수익성 최대 55% 악화 전망
“주기 연장·유연한 운영 필요”

핵심요약
◆호실적에도 사면초가 빠진 카드사
지난 3분기 국내 카드사들의 순이익이 1년 전보다 8%가량 오르는 등 예상을 웃도는 호실적을 기록했다. 다만 카드사들이 마냥 호실적을 기뻐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카드 대출 연체율이 치솟는데다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재산정 시기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수수료 적격비용 제도 개선 필요”
카드 대출 리스크가 늘어나는 가운데 가맹점 수수료율이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이로 인한 본업 경쟁력 약화 및 혜자카드 단종 문제 등 후폭풍이 우려되고 있다. 이에 업계는 실질적인 개선방안과 함께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카드사들이 예상을 웃도는 호실적을 기록했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3년마다 돌아오는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재산정 시기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카드사의 본업인 신용판매업이 수수료율 인하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올해 또다시 수수료가 내려갈 것으로 전망되면서 ‘혜자 카드(소비자에게 혜택을 많이 제공하는 카드)’가 사라지는 나비효과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카드사, 실적 개선 성공
20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신한·삼성·현대·KB국민·롯데·하나·우리·BC카드 등 국내 8개 카드사의 누적 순이익은 총 2조 2500억원이다. 이는 작년 3분기(2조 781억원)보다 약 8.3% 오른 액수다.
카드사 중 가장 많은 순이익을 거둔 곳은 신한카드다. 신한카드는 전년 동기 대비 17.8% 증가한 5527억원의 순이익을 시현했다. 뒤를 이어 삼성카드(5315억원), KB국민카드(3704억원), 현대카드(2401억원), 하나카드(1844억원), 우리카드(1402억원), BC카드(1293억원), 롯데카드(1025억원) 순이었다.
카드사 가운데 순이익이 가장 크게 늘어난 곳은 BC카드였다. BC카드의 순이익은 작년 3분기(696억원)보다 85.8% 늘었다. 하나카드(44.7%), KB국민카드(36%), 삼성카드(23.6%)의 순이익도 눈에 띄게 늘었다.
다만 롯데카드의 순이익은 전년 동기(3657억원) 대비 72% 감소했다. 지난해 상반기 자회사인 로카모빌리티의 매각으로 인한 일회성 처분이익 기저효과가 작용한 데 영향을 받았다. 이 같은 일회성 처분이익 효과를 제외한 연간 순이익은 작년과 유사한 수준으로 전망된다.
카드사들의 실적 개선에 대해 금융권 안팎에선 카드사 본업인 신용판매업 경쟁력이 위축된 상황에서 큰 폭의 이익 증대를 이뤄낸 고무적인 모습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이익 증대의 원인이 대출성 자산에 따른 것이란 점에서 리스크도 크게 늘어났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카드론, 카드사 호실적 견인
카드사 실적 개선을 견인한 것은 카드론, 현금서비스 등 ‘대출성 자산’이었다.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국내 카드 대출 및 연체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국내 8개 카드사의 대출 금액은 44조 665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금감원이 통계를 추산한 2003년 이후 최대치다. 세부적으로 단기 카드대출인 현금서비스 잔액은 5조 8760억원, 장기카드론 잔액은 38조 7880억원이었다.
카드론 잔액은 1월에 전월 대비 4507억원 증가한 데 이어 2월 2000억원, 3월 78억원, 4월 4823억원, 5월 5542억원, 6월 1000억원, 7월 6206억원, 8월 6044억원으로 차츰 늘어나는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카드론 잔액은 41조 6869억원으로 전월 대비 소폭 감소해 지난해 12월 이후 9개월 만에 처음으로 줄었다. 분기 말 부실채권 상각효과와 함께 금융당국이 카드론 확대에 대해 제동을 건 데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대출액이 늘어난 만큼 연체 리스크가 불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월 기준 카드 대출 연체액은 1조 3720억원, 연체율은 3.1%에 달했다. 이는 ‘카드대란’이 빚어졌던 2003년(6조 600억원), 2024년(1조 9880억원)을 제외하고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카드 대출 연체 규모는 2022년 8600억원을 기록한 이후 치솟기 시작해 올해 1조원을 넘겼다. 연체율도 2021년 1.9%를 기록한 이후 지난 8월 3.1%를 기록했다.
◆다시 돌아오는 수수료 인하
카드 대출 리스크가 늘어나는 가운데 올해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도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이로 인한 후폭풍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안에 회계법인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수수료율을 결정하는 ‘적격비용 재산정’을 시행할 예정이다.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는 가맹점 수수료 원가 분석을 바탕으로 우대 가맹점의 수수료를 주기적으로 조정하는 제도다. 금융위는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라 ▲자금조달 비용 ▲위험관리 비용 ▲일반관리 비용 ▲승인·정산 비용 ▲마케팅 비용 등을 반영해 3년마다 재산정해왔다.
제도가 도입된 이래 수수료는 4차례 조정돼 연 매출 3억원 이하 영세 가맹점의 경우 2.3%에서 0.5%로 낮아졌다. 연 매출 3억원 이상 30억원 미만 소규모 가맹점도 3.6%에서 1.1~1.5%로 낮아졌다. 지금까지의 추세를 감안하면 금융당국이 올해도 가맹점 수수료율을 낮출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문제는 카드 수수료율 인하로 인해 카드사들의 본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가 분석한 결과 적격비용 제도 도입 이후 가맹점 수수료율 감소로 수익성 악화는 세전이익의 최대 55%(2019년) 수준이다. 구체적으로 ▲2012년 수수료율 인하에 따른 가맹점 수수료 수익은 연간 3300억원 ▲2015년 인하 이후에는 연간 6700억원 ▲2018년 이후에는 연간 1조 4000억원 감소했다.
금융소비자들의 편익도 줄어들 전망이다. 카드사들은 수익성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프리미엄 카드 출시와 연회비 인상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일부 카드사의 경우 금융소비자들에게 혜택을 많이 제공하고 수익성이 낮은 ‘혜자 카드’를 계속 단종하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국내 8개 카드사가 올 상반기 단종한 카드는 373개(신용카드 282개, 체크카드 91개)로 조사됐다. 지난해 전체 단종 건수(405개)의 70%를 이미 넘어섰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은 카드사의 수익성 악화와 재무 건전성 문제를 인지하고 적격비용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장수 금융위 중소금융과장은 지난 12일 ‘2025년 경제 및 금융 전망’ 세미나에 참석해 “적격비용 산정 방식은 이제 어느 정도 안착되고 있다”며 “현행 산정 방식을 그대로 갈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산정 주기를 어떻게 가져갈지 대한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업계는 실질적인 개선방안과 함께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정완규 여신금융협회 회장은 지난달 14일 ‘여신금융 정책세미나’에서 “적격비용 재산정 주기가 3년 간격으로 돌아올 때마다 카드수수료를 둘러싼 사회적 비용도 크게 발생하고 있다”며 “재산정 주기를 기존 3년에서 연장하거나 필요한 시점에 재산정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또 “호주·미국 등에선 최근의 환경변화에 맞게 유연하게 적격비용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며 “국내도 시장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적격비용 산정주기를 연장하거나 필요한 시점에만 재산정을 행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편”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