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면 대표이사. ⓒ천지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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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언론인으로서 고(故) 채 상병(본명 채수근)의 희생 뒤에 남겨진 국론분열에 대해 조심스럽게 펜을 잡았다. 물론 필자의 사명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다.

진정 해병대원이었던 채 상병이 원하는 진실이 뭘까. 고인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진실규명 과정에서 국론분열을 초래하고 군의 위상이 한없이 추락하고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박정훈 수사단장의 항명과 대통령실을 비롯한 윗선 외압 의혹이란 혼선에 국민들만 볼모로 잡혀 피로도를 높여가고 있다.

자신의 희생이 양아치 애국자들과 양아치 정치인들의 거짓 정의에 희생양이 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채 상병을 두 번 죽이는 게 아닐까.

형식적인 진실규명은 남아있을지 몰라도 어쩌면 국민들은 밝혀지지 않을 것이 없는 세상에서 이미 진실을 다 알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세상엔 진실로 다 끝나는 게 아니며, 절대 간과해선 안 될, 진실 그 이상의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이에 대해선 어느 노병(老兵)의 일화를 대신해 진실과 같은 현실을 찾아가 보자.

노병인 정 대위(가명)는 소위 임관 후 특전사로 부임됐다. 얼마 후 박정희 시해 사건이 발생했고, 요동치는 격동기에 10.26, 12.12, 부마 나아가 광주사건 등의 모든 현장에 참여하며 군복을 입은 군인으로서 나름 국가에 충성을 다했다.

하지만 그 충성은 국가에 대한 충성이 아닌 한 사람을 위한 맹견 노릇을 그렇게 열심히 해 왔음을 깨닫게 됐고, 그 깨달음은 자기 손으로 자랑스럽게 여겼던 군복을 벗고 계급장을 떼게 했다.

그 후 국회는 청문회를 열었고 격변기에 있어졌던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혈안이 됐고 정치는 실종됐다.

당시 평민당 측에선 국회 증인 세우기에 혈안이 돼 있었고, 이때 군복을 벗은 정 대위는 그들의 정보 수집으로 자신들 편의 증인 대상 리스트에 올랐다. 번번이 날아오는 청문회 증인출석요구서와 가정 방문 등으로 정 대위는 출가(出家)해야 했고, 잠시 동안이긴 했지만 마치 방랑자와 같은 생활을 해야 했다.

그는 자신이 생각했던 군인의 길이 아니었기에 후회하고 원망하며 스스로 군복을 벗긴 했지만 군과 국가를 상대로 대척관계에 설 수는 없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이제 박정훈 대령에게 질문하고 싶다. 자신의 정의와 진실보다 더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은 없는지를 고민해 보라고 주문해 보고 싶다.

군인의 길은 희생의 길이고 군복은 희생의 제복이다. 나를 죽여 군과 군의 기강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조직이며 신분이 곧 군인이다.

지금 귀신도 무서워 벌벌 떨던 해병 전우들의 사기를 생각해 봤는지, 나아가 전군의 위신과 사기를 고민해 봤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진실과 정의가 군의 위계질서와 기강과 군의 존립과 국가의 존립보다 위대한 것인지를 또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

뿐만이 아니다. 임성근 사단장을 포함한 제 지휘관 나아가 국방부 장차관 등에게도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조직도 아닌 군 지휘관은 위엄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 위엄은 모습에서 나오는 게 아니며 솔직함과 진실함과 책임감에 있다.

‘상은 부하에게 책임은 내가’라는 군인의 미풍양속과 같은 덕목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지금 책임질 줄 모르고 희생할 줄 모르는 군 지휘관들, 당신들이 입고 있는 제복이 당신을 비웃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안보 위기감이 고조돼 가는 이때, 그 일선에서 부하를 지휘하며 자리를 지켜야 할 중차대한 이때, 그대들은 지금 위치 이탈 즉 전선이 아닌 진실공방의 자리에 앉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도 부하의 엄숙한 죽음 앞에서 솔직함과 책임감은 실종된 채 수치를 드러내며 변명으로 일관하는 장면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찌 이뿐인가. 이 사태를 악용하려는 양아치 애국자들이며 지도자들이 있다. 정강도 정책도 없이 그저 자신들의 한풀이를 위해 정치에 뛰어든 하이에나들이 바로 그들이며, 아이러니한 것은 그래도 그들을 따르는 국민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정치적 목적에 악용돼 군(해병)도 갈라지고 국민도 갈라지게 하는 이번 사건은 그들의 거짓된 슬픔과 거짓된 정의로 인해 이미 혼탁해졌고, 결국 왜곡된 진실공방으로 이어져 가고 있다.

진정한 군인이라면 책임과 희생의 터 위에 설 줄 알아야 하고, 정의와 진실을 외치는 쪽에서도 진실과 정의 위에 현실이 있다는 점을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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