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환공 30년 봄에 채나라를 멸망시킨 제나라는 초나라를 쳐들어갔다. 초나라에서는 굴원을 장군으로 삼아 군사들을 출병시켰다. 제나라는 초나라의 맹렬한 반격에 밀려 군사들을 소능까지 후퇴시켜 초나라와 대치하고 있었다.

환공이 제나라군의 우위를 자랑삼아 굴원에게 항복하라고 위협했다. 이에 대해 굴원의 반격 또한 만만하지 않았다.

“그쪽의 행동이 도리에 맞는다면 받아들이겠소. 그러나 도리에 어긋난다면 한 걸음도 물러설 수 없소. 방성산을 성으로 삼고 장강, 한수를 호로 삼아 상대하겠소. 제아무리 제나라 군이라 할지라도 그리 호락호락 쳐들어오게 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러한 기백에 압도당한 환공은 굴원과 맹약을 맺고 군사를 돌려세웠다. 돌아가는 길에 제나라 군사들이 진(晋)나라 영토 안을 통과하려고 했다. 그러자 진나라 대부인 원도도가 거짓말을 꾸며 제나라 군사들을 동쪽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했다. 환공은 즉시 그 뜻을 알아 차렸다. 그것이 근원이 되어 그 해 가을 제나라는 진나라를 공격했다. 그 해 진나라에서는 태자인 신생이 죽임을 당했다.

환공 35년 여름 환공은 규구에서 제후들과 모여 맹세했다. 그 자리에는 주나라 양왕으로부터 재공을 사자로 보내 환공에게 하사품을 보내왔다. 즉 문왕, 무왕의 조(제단의 고기), 붉은 칠을 한 활과 화살, 조정에 올 때 타는 수레였다. 재공은 환공에게 말하기를 양왕이 신하의 예를 갖출 것 없이 그냥 받아두라고 했다는 뜻을 전했다. 그 말을 듣고 환공은 그냥 받으려고 했다.

“그건 당치도 않으신 일인 줄 아옵니다.”

옆에 있던 관중이 만류를 했다. 그래서 환공은 땅에 엎드린 채 하사품을 받았다. 그 해 가을에 환공은 또다시 규구에 모여서 제후들과 맹세를 했다. 환공은 먼저 번보다 교만한 빛을 짙게 띠고 있었다. 주 왕실은 먼저 번처럼 재공이 참석했다. 제후들 중에서는 제나라에 반감을 갖는 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진(晋)나라 헌공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헌공은 우연한 병 때문에 뒤늦게 참석하게 되었는데 도중에 재공을 만나게 되었다.

“제후가 우쭐대는 꼴이란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소. 참석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소” 하고 재공이 말하자 헌공은 참석을 포기하고 곧장 되돌아가고 말았다. 얼마 뒤 진나라 헌공이 세상을 떠났다. 그 뒤 진나라 대부인 이극이 공자인 해제와 탁자를 죽였다. 그러자 진(秦)나라의 목공은 자기 부인이 진나라 헌공의 딸인 관계로 양나라에 있던 이오를 진(晋)나라의 왕으로 옹립하려 했다.

환공으로서는 모른 척하고 눈 감아 버리기에는 제후들의 우두머리로서 체면이 서지 않았다. 진(晋)의 내란을 재빨리 평정하겠노라 말하고는 진나라의 영토인 고량까지 쳐들어갔다. 그는 대부인 습붕에게 명하여 진나라와도 상의를 한 다음 진나라 왕의 자리에 이오를 오르게 하고 돌아왔다. 그 무렵 주 왕실의 형편은 매우 쇠퇴하고 있었다. 강국이라고 한다면 제, 초. 진(秦), 진(晋) 등 네 나라가 뛰어났다. 그중에서 진(晋)나라는 처음에 맹세에 참가했으나 헌공이 죽은 뒤 국내가 혼란해서 맹세 같은 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서쪽의 지도자인 진(秦)나라 목공은 먼 곳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중원 여러 나라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또한 남쪽의 지도자인 초나라의 성왕은 본디 형만 땅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는 야만족이라고 겸손해하면서 처음부터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중원 여러 나라들이 맹세가 중심이 되는 것은 자연 제나라 밖에 없었다. 더구나 환공이 널리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에 제후들이 그 아래에 모여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환공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차츰 교만해져 갔고 마침내 야망을 품게 되었다.

“나는 이미 남으로 소능까지 원정해서 웅산을 살펴보았고 북으로는 산윤, 이지, 고죽까지 없앴다. 서쪽으로는 대하를 치기 위해 사막을 넘어간 일도 있었다. 그동안 제후들은 아무도 내게 도전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늘에 이러기까지 전시에 맹세를 열기는 세 차례, 평소에 맹세하기는 여섯 차례, 모두 아홉 차례나 제후들의 맹세를 성립시킴으로써 천하의 난리를 평정했다. 저 옛날에 하(夏), 은(殷), 주(周) 세 나라 성왕께서 천명을 받은 바 있거니와 나에게도 그러한 자격이 충분히 있다. 이제 나는 태산과 양보에 올라가 봉선의 제를 올리려 한다.”

관중이 중대한 일이라고 간언했으나 환공은 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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