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강 우체국

이승은(1958~  )

기한을 넘긴 고지서 상냥히 받아주던

여직원 혼자 앉아 점심을 들고 있다

반 남은 도시락 속의 무말랭이 같은 가을

[시평]
우리는 작은 친절에 때때로 감동을 하기도 하고, 아주 하찮은 일에 고마워하기도 한다. 실은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우리네 삶이 지향하는 것이 무슨 거창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우리 일상을 지나가는 아주 작고 사소한 일들, 그런 일들로 우리는 때로는 괴로워하고, 때로는 기뻐하기도 한다.
기한을 넘긴 고지서를 상냥하게 아무 군말 없어 받아주던 마음이 예쁜 사강 우체국의 여직원. 다른 직원들이 모두 점심을 먹으러 나간 텅 빈, 혼자 지키는 우체국 사무실 안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는다. 마음이 예쁜 사람은 먹는 모습도 예쁘다고 하던가. 아니 그가 먹는 도시락까지도 예뻐 보이는 것인가.
먹다가 만, 반만 남은 도시락 속에는 햇살 속 모든 물기를 말려버린, 그래서 여릿여릿 수줍게 웃고 있는 그녀 같은 무말랭이가 있다. 이 가을 햇살마냥 투명하고 맑은 그녀의 예쁘디예쁜 가을 미소가 담겨져 있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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