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박시교(1945~  )

무위(無爲)와 잘 놀다간 내 시우(詩友) 신현정이

‘훔쳐 간 자전거’ 타고 구름 사이 누비다가

그곳에 무주공산(無主空山)이라며

오줌 갈기는

봄 한때

[시평]
신현정 시인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시를 쓰며 지내던 나의 오랜 친구였다. 나이 60을 조금 넘기고는 세상을 달리했다. 죽기 열흘 전까지 시를 쓰며, 시를 읽던 시인. 아무러한 구속 없이 모든 것을 제 집 드나들 듯하며 살던 신현정. 그래서 더욱 오늘 그가 그립다.
무위(無爲),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연의 모습 그대로 살다간 듯한 시인, 신현정. 그의 대표작의 하나인 ‘자전거 도둑’, 그래서 길가에 서 있는 아무 자전거나 올라타고는 벚꽃 휘날리는 길을 아무 거리낌 없이 룰루랄라 달려가던 무위의 시인.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느 날. 하늘나라에 있을 신현정이가 그곳도 아무 주인이 없는 무주공산(無主空山)이라며, 이내 지상을 향해 오줌을 갈긴다. 그 신현정의 오줌 같은 봄비. 봄비를 맞으며,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술에 취해 히죽히죽 웃는, 그런 모습의 시인 신현정이가 문득 그리워진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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