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큰 나무들

구재기(1950~ )

키 큰
나무들은
담 밖으로 목을 내민다

 

그에 따라
잔가지들도 자꾸
밖으로만 뻗어가는데

안에서는
점점 그늘이 짙어지고
밑동에는 푸른 이끼가 슨다.

 

[시평]
어느덧 나무는 키가 훌쩍 커져 가지들을 담장 밖으로 뻗어가고 있다. 담장을 훌쩍 넘은 나무는 담장 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밖으로만 시선을 두고 자꾸 밖으로만 뻗어나간다. 잔가지들도 이를 따라 밖으로만 뻗어가는데, 실은 집안에 남은 밑동은 그늘에 묻혀 푸른 이끼마저 슬고 있다니.
‘키’가 권력이라는, 조금은 우스운 말이 있다. 맞는 말인지는 몰라도, 사람은 키가 크고 봐야 한다는 이야기이리라. 왠지 키가 훤칠하게 크면 한 번을 봐도 더 쳐다보는 것이 사람의 심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신이 사람들의 시선에 있다고 생각을 해서 자칫 우쭐해지기가 쉽다. 모든 잘나고 키 큰 사람들이 다 그러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자신의 잘난 것만 믿고 밖으로만 나도는, 그래서 자신은 안으로 썩어가든 말든, 겉만 번드름한 사람 또한 우리네 주변에는 있다.
밑동이 그늘 속에서 이끼가 스는 나무를 보며, 그러면서도 자신을 모르고 밖으로만 뻗어가는 키 큰 나무를 보며, 문득 나의 삶이 이러한 것은 아닌지, 한번쯤 자신을 뒤돌아보는 것, 살아가면서 때로는 유익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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