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민족은 역사상 전쟁을 유발한 온상이었다. 대부분의 전쟁이 민족적 충돌에서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민족은 공동의 언어, 생활지역, 종교와 신앙, 풍속과 관습으로 이루어진 자연적 내부집단이므로 외부집단 즉 이민족에 대한 적의도 자연적이다. 민족과 민족 사이에는 일시적으로 적의를 해소하고 화목해질 때도 있지만, 그것이 적의가 영원히 해소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민족끼리의 적의는 일시적으로 잠복할 뿐이다. 역사상 활력을 지닌 민족의 발전과정에서는 무한한 팽창력이 드러난다. 대부분은 다른 민족의 이익을 희생하여 자기민족의 생존과 발전을 추구한다. 이러한 역사는 인류사회의 자연적 현상이다. 모욕과 압박을 받던 민족이 각성하여 압제자에 대한 반항을 통해 독립과 해방을 쟁취한 후, 자기보다 약한 민족을 압박하는 현상도 자주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의 민족이 약했다가 강해지면서 발전하는 과정에서 억제할 수 없는 전쟁규율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의 민족이 굴기과정에서 자기 민족의 해방을 쟁취하거나 다른 민족을 정복하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전쟁을 겪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페르시아전쟁에서 그리스인은 외세의 압박에 대항한 전쟁의 승리로 민족의 생존과 미래의 번영을 위한 기반을 조성했다. 그러나 그리스민족의 발전과 상승세는 거기에 멈추지 않았다. 알렉산더는 직접 동방민족을 향한 원정을 완수했다. 헬레니즘시대가 열리자 그리스인은 인도까지 진출했다. 로마인은 처음 티베르강에서 갈리아인의 침입을 물리치고 생존하자 그것을 발전의 기회로 삼았다. 카이사르시대가 되자 갈리아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피압박자에서 압박자로 자리를 바꾸었다. 게르만민족은 아드리아전쟁 이후 오랫동안 로마인으로부터 벗어났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방대한 제국을 철저히 짓밟으면서 마침내 자기 민족의 국가 프랑크왕국을 세웠다. 근대사에서 독일민족은 통일전쟁 이후 급속히 확장주의의 길로 접어들었다. 1870년 보불전쟁은 2가지의 서로 다른 성질이 동시에 공존한 전형적인 사례였다. 그것은 민족통일의 합리성과 알자스, 로랭을 병탄한 침략적 확장이라는 비합리성이다.

현대문명의 윤리적 판단은 우리에게 전자는 정의에 부합하는 합리적이고 긍정적 가치를 지니며, 후자는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인류의 평등원칙을 유린하는 것으로 부정적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윤리적 역량은 역사상 어떤 민족에게도 발전과정에서 내재적 억제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무한한 추진동력으로 작용했을 뿐이다. 피압박적 상태에서 타인을 압박하는 상태로 발전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충만한 활력을 지닌 민족이 자기의 발전을 추구할 때 다른 민족의 이익에 손해를 입히지 않으려고 자제력을 발휘한 경우는 아주 드물다. ‘민족의 생존을 위해 싸운다’는 구호는 강력한 선동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파고들었다. 피압박민족이 독립과 해방을 위해 싸운다는 것도 사실은 이미 독립과 해방을 이룬 다른 민족을 짓밟으면서 미래의 생존공간을 위해 싸운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구호였을 뿐이다. 이러한 정황이 역사의 깊은 곳에 숨은 전쟁의 근원 가운데 하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족주의는 편협성을 지닌다. 민족주의의 위험성은 ‘민족지상’이라는 강렬한 경향이다. 하나의 민족이 성공했을 때 민족적 우월감과 세계적 책임감이 발생한다. 이것이 더 발전하면 종족주의, 예를 들어서 ‘로마의 책임’ ‘백인의 책임’ ‘게르만의 사명’ ‘대화(大和)민족의 의무’ ‘범슬라브주의’ ‘대세르비아주의’ ‘중화주의’와 같은 민족의식으로 변한다. 이러한 이것이 확장되면 유태인이나 흑인을 열등한 근성을 지닌 민족으로 폄하한다. 편협한 민족주의를 파생한 관념은 여러 선진민족으로 하여금 자기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거나 해방자라는 자기도취적 감상에 빠져 미치광이처럼 전쟁을 일으킨다. 근대사에서 일본이 보여준 행위는 이러한 사례의 전형이었다. 편협한 민족주의는 역사상 중요한 전쟁의 근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을 격화시킨 중요한 원인이기도 했다. 민족주의는 때로는 잠복하고 때로는 노출되며 역사상 기복을 보여주며 전쟁의 심층적 원인과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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