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란눈의 신부’로 유명한 빈민운동의 대부 정일우 신부가 2일 오후 7시 40분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지병으로 선종했다. 향년 79세. (사진출처: 연합뉴스)

국내 노동운동 선구자
3선개헌·유신 반대 등
한국사회운동 앞장서다
몇 번이나 강제추방 위기

청계천 판자촌 들어가
복음자리·한독주택 건립
철거반대 시위 주도
잼 만들어 철거민 지원

[천지일보=정현경 기자] 지난 2일 천주교 예수회 소속 정일우(본명 존 데일리) 신부가 79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파란 눈의 신부’ ‘빈민운동의 대부’ 등으로 널리 알려진 정 신부는 평생을 한국의 빈민들을 위해 살았고, 지난 1986년 공로를 인정받아 고(故) 제정구 전 의원과 함께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공동수상했다.

1935년 미국 일리노이주 파일로 마을에서 태어난 정일우 신부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으로 18살에 예수회에 입회했다. 세인트루이스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1960년 9월 예수회 신학생 신분으로 한국에 처음 들어왔다. 3년간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던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1963년부터 세인트루이스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66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1966년 한국에 다시 돌아와 서강대 설립 주역인 고(故) 바실 프라이스 신부(2004년 선종)의 제자로서 서강대에서 강의를 하며 빈민들을 돕는 빈민운동에 앞장섰다. 1966년 프라이스 신부와 함께 국내 최초로 노동문제연구소를 열어 34년 동안 노동자들에게 노동법과 노조 활동, 단체교섭 방법 등을 가르친 국내 노동운동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이미 1969년 홀로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할 만큼 약자들과 함께해 온 그는 그로 인해 몇 번이나 강제추방될 뻔했다. 1972년 학생들이 유신반대 운동을 하다 당시 중앙정보부에 잡혀 들어간 것을 계기로 한국의 사회운동에 적극 나서게 됐다. 이때 정 신부는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8일 동안 단식했다.

1973년 청계천 판자촌에 들어가 고(故) 제정구 전 의원을 만난 뒤 양평동 판자촌 생활을 시작으로 철거민 집단이주 마을인 복음자리, 한독주택, 목화마을을 건립했다.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0년대 서울 목동과 상계동 등을 강제 철거하는 데 맞서 빈민들이 스스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의식 교육을 하고 판자촌 철거반대 시위를 주도하면서 도시빈민운동을 벌였고, 당시 철거민들의 자립을 위해 ‘복음자리 딸기잼’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고인은 빈민촌에서 빈민, 부랑아, 걸인들과 함께 거리낌 없이 어울리며 함께 사는 모습을 보여 훗날 한국의 사제들이 빈민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한 삶의 거울로 평가받는다.

그는 생전에 “판자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개발 논리에 밀려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그들을 외면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정 신부는 평소엔 사람들에게 천주교를 믿으라고 말하는 법도, 신부인 것을 나타내는 법도 없었다고 한다. 모처럼 미사 때 미사복을 입은 그에게 누군가 “이제야 신부같네요”라고 말하면 “이 때라도 신부인 척해야지”라고 점잔을 뺐다는 일화가 있다.

1994년 11월부터는 농민 속에서 살기로 하고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에서 예수회 누룩공동체를 이뤄 농부로 살았다. 1998년 ‘정일우’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으로 귀화했다.

2004년 70세 생일을 앞두고 영적 수련을 하며 무려 63일간 단식을 지속하다 쓰러진 후 이듬해 중풍으로 다시 쓰러져 모든 활동을 접고 요양해왔다. 지난 2일 오후 7시 40분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지병으로 선종했다.

예수회 한국관구는 “평생을 통해 이웃을 위한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시고 하느님의 품에 안긴 정일우 신부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문규현 신부는 “우리들의 큰 스승, 대선배 정일우 신부님. 신부님으로부터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진짜 그리스도를 봤지요. 약자와 소외받는 이들을 향한 무한한 사랑, 끝없는 비움과 겸손…. 이 나라 민중의 벗이요 아버지요, 후배 사제들에게 조용히 큰 가르침을 주시던 신부님을 애통함 속에 이제 보내드립니다. 더 없는 평화와 안식을 누리소서”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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