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산은 아름답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로 시작되는 미당 선생의 푸르른 날이 절로 생각나는 계절이다. 높은 산에 올라보니 아직 초록이 오기 전, 마치 산에 비단을 깐 듯 옅기도 하고 때론 짙기도 한 연두의 빛깔은 참으로 눈이 부실 지경이다.

이처럼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5월의 산에서 색다른 걸 깨닫는다. 산에는 이처럼 아름다움만 있는 게 아니라 갖가지 사연과 함께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미래의 문화가 담긴 종교와 신앙이 살아 있다. 우리 민족은 산과 함께 시작해 산과 함께 살아 왔고 지금도 산과 함께 하고 있으니, 내가 곧 산이고 우리가 곧 산이며, 산이 곧 나요 우리다.

우리의 선진들은 산에서 지혜를 얻었고 산에서 생명을 얻었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 있어 산은 하늘의 뜻을 받는 신성한 공간이며 영험한 장소로 여겨져 왔다. 하늘로부터 생명을 받고 지혜를 얻는 영험하고 특별한 공간이었다. 자식이 없으면 산으로 가서 빌었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하늘과 맞닿은 신령한 산을 찾아 기우제를 올렸다. 조선 명종 때 단성소로 유명한 대학자 남명 조식도 지리산 기슭에 산천제라는 사당을 짓고 늘 지리산을 바라보며, 또 지리산을 12번이나 오르며 학문의 깊이를 더했으며, 앞선 성인들의 혜안을 닮으려 애를 썼다.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로 손꼽히는 퇴계 이황 역시 봉화의 청량산에 매료되어 숨겨두고 기회만 되면 홀로 청량산을 올랐으니, 청량산은 곧 이황의 산이었다. 뿐만 아니라 환웅이 하늘로부터 3000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내려와 이룩한 신시(神市)도 태백산이었다.

백두에서 한라까지라는 말처럼 산에서 산으로 이어지며 끝이 난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의 머리가 되는 백두산의 뜻도 지혜의 머리가 되는 산이라 하니 과연 그러하다. 그러고 보니 산은 곧 우리의 생각이요 정신이요 문화다. 온갖 산의 이름은 이처럼 뜻글자인 한자로 지어져 있으니 당연히 뜻과 의미를 고스란히 간직하며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동양의 3대 종교를 흔히 유불선이라 한다. 이 유불선의 사상 역시 바로 산에서 찾을 수 있다. 명산에는 의례히 유불선 3도가 공존하며 예로부터 종교성이 강한 민족이었음을 산은 증명하고 있다.

청량산은 조선시대 이전에는 보살봉 의상봉 반야봉 원효봉 등 불심이 가득한 산이었으나, 조선시대 와서 이황은 중국의 무이산과 연관시키며 육육봉이라 불렀다. 청도의 비슬산은 이름에서 이미 불교적 색채를 발견할 수 있으며, 도성과 관음이 도를 닦은 후 도통군자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일연의 삼국유사를 통해 도가적 색채 또한 짙은 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삼척의 두타산은 두타(頭陀) 또는 두타행이 말하듯,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 수행을 닦는다는 의미로 청옥()과 함께 불교사상을 잘 대변하고 있는 듯해 보인다. , 두타(고행)의 길로 청옥(극락)은 완성되며, 청옥의 문은 두타의 길로 인해 열린다. 그러면서도 두타의 길로 완성되는 청옥에 이르니 그곳에는 무릉반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는 중국 도연명이 쓴 도화원기에 나오는 신천지와 낙원과 이상의 세계를 묘사한 무릉도원(武陵桃源)이었다. 뿐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 가장 귀중한 자료인 이승휴의 제왕운기(帝王韻紀)’가 이곳 두타산 기슭인 천은사 자리에서 쓰여졌으니, 그야말로 유불선이 공존하는 영산이다. 계룡산 속리산 금강산 등 방방곡곡 명산마다 종교 내지 종교문화가 가득한 우리의 아름다운 산이다.

이렇게 종교문화가 한껏 깃든 산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깨달으라고 하는 것일까. 만인이 읽어야 한다는 성서에도 에덴동산에서 시작해 시온산으로 끝이 나니 산에서 산으로 끝이 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말세를 예언한 조선 명종 때 남사고 선생은 격암유록, 소위 남사고 비결서를 통해 弓弓乙乙之間十勝地는 말을 남겼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전쟁이 나면 피하여 살아남을 10군데 피난처로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은 말세를 만난 그 시대 사람들이 찾아야 할 영적인 구원의 처소를 알리고 있었다. , 신앙인들은 말세가 되면 십자가 곧 하나님이 계신 곳을 찾아야 하나, 그 곳은 오늘날의 기독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오직 십자가의 도(하나님의 말씀)로 싸워 이긴 바로 이긴자를 뜻하며, 나아가 이긴자가 있는 곳을 감추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비산비야(非山非野)’요 인산인해(人山人海)라 하듯, 이긴자와 이긴자를 중심으로 한 조직체가 십승지며, 나아가 말세에 모든 사람들이 찾아야 할 구원의 처소인 것이다.

이는 무너진 하나님의 나라 에덴동산이 육천 년 만에 회복되어 재창조되는 영적 시온산이며, 진리를 통달한 도통군자들이 모여 있는 진리의 성읍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 아름다운 5월의 산을 통해 신이 설계해 놓은 창조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깨닫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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