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민지 기자]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는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그로칼랭을 발표한 직후 로맹 가리 이름으로 출간한 첫 작품이다.

지하철 경고문에서 제목을 따온 이 소설은 예순을 앞둔 남자의 무력한 육체와 경기 침체를 맞은 서유럽의 상황이 절묘하게 병치된다는 데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이는 비단 한 인간의 노쇠가 아닌 한 사회, 더 나아가 한 문명의 종말과도 궤를 같이한다. 이 경계를 지나면 승차권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지만, 그 경계조차 넘어서게 만드는 존재가 있다.

늙음에 대한 두려움, 존재를 압박하는 강박관념을 그리는 로맹 가리의 언어는 우회적이지 않고 적나라하며 시종일관 특유의 유머를 발휘한다.

이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서술 도중 화자가 스스로에게 말하는 듯한 독백이 불쑥 끼어든다는 점이다. 말미에 가서야 드러나지만, 고백의 형식을 띤 이 소설은 레니에가 자신의 아들에게 남기는 길고긴 한 권의 노트다. 이제 모든 게 예전 같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이 고백기는 정치와 권력, 그리고 돈과 섹스가 떼려야 뗄 수 없는 복잡한 관계망에 속해 있음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로맹 가리 지음 / 마음산책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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