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갯불

최명길(1940~  )
 

번갯불의 일생은
일획 섬광이다.

찰나를 긋다 사라지는
그의 집은 허공,

문도 벽도 없다.
다만 광막할 뿐이다.

[시평]
이 세상 가장 빠른 것을 우리는 흔히 ‘번개’라고들 말한다. 하늘 한 자락에서 번쩍하고 치고는 이내 하늘 어느 한 자락으로 사라져버리는 번개. 그의 일생은 그래서 ‘일획 섬광’이 분명하다. 찰나를 긋다 이내 사라지는 그의 집은 허공이 분명하다. 그래서 문도, 또 벽도 없다. 다만 광막할 뿐, 아무 것도 없다.
어찌 보면, 우리의 살아온 60평생, 70평생, 이 번개와 같은 삶 아니었을까. ‘일획 섬광’의 시간도 있었고, ‘찰나를 긋는’ 시간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남는 것은 허공 같은 허무, 그저 기댈 벽도, 또 열고 들어설 문도 없는 다만 광막한, 그러한 삶, 아니었을까. 어느 날 문득 엄습해오는 삶에의 그 허망, 우리 어쩌지 못하며 때때로 남몰래 몸서리친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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