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문제가 황제로 즉위했을 때 여씨 일족을 없애는 데 제일 공이 컸던 주발을 조정 최고 지위인 우승상에 임명하고 금 5천근과 봉지 1만호를 하사했다. 그러고 한 달 남짓 지나자 주발에게 이렇게 경고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당신이 여씨 일족을 없애고 신제를 옹립했을 때 이미 권세는 다한 것이오. 게다가 엄청난 포상도 받고 우승상 자리까지 얻어 문제의 각별한 은총을 받고 있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나 다름이 없소. 그대로 우승상에 머물러 있다간 언제 화를 당할지 모르는 일이오.”

주발은 그 경고에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황제에게 우승상의 인수를 반납하겠다고 청원한 것이었다. 문제도 그 청을 들어 주었다.

일 년 뒤에 진평이 죽자 주발은 다시 그 후임으로 기용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나자 이번에는 그 자리를 물러날 것을 권고 받게 되었다.

“내가 제후들에게 각기 자신의 영지로 돌아갈 것을 명했는데도 이것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그대는 내게 매우 소중한 사람이지만 이때에 솔선해서 영지로 돌아감으로써 다른 제후들에게 모범을 보여 줄 수 없겠는가?”

주발은 승상을 바로 그만 두고 자신의 영지인 강현으로 돌아갔다.

그때부터 주발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하동군의 장관이나 군사령관이 각 현을 돌아보고 강현으로 올 때마다 문제가 자기를 죽이기 위해 보낸 군사들이 아닌가 하고 겁을 먹고 스스로 갑옷과 투구로 무장하고 가신들에게도 무장을 시킨 채 그들을 맞았다.

일 년 남짓 사이에 그런 일이 몇 번 되풀이 되자 주발은 모반 혐의로 고발되었다. 문제는 그 사건을 정위에게 맡겼다. 정위는 군사를 보내 주발을 사로잡아 신문하였다.

주발은 죽음이 두려워 변명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나 고문이 가해지고 옥리에게 천금을 주자 뜻밖의 효과를 보게 되었다.

옥리가 조서 뒤에다가 ‘공주에게 증언을 시키라’고 써놓은 것이다. 공주란 문제의 딸로 주발의 큰아들인 승지의 아내다. 옥리가 그 공주를 증인으로 세울 것을 가르쳐 준 것이다. 그 무렵 문제의 주위에서도 주발을 구제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주발은 일찍이 문제로부터 받았던 벼슬과 포상을 모두 박 태후의 동생 박소에게 주어버렸었다. 그 박소가 주발이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박 태후에게 찾아가 구원을 호소한 것이다. 박 태후도 주발이 모반을 일으킬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므로 아들 문제가 찾아오자 꾸짖었다.

“강후를 체포하다니 무슨 영문이오? 그 사람은 여씨 일족을 없애고 그대가 즉위할 동안 옥쇄를 가지고 있었소. 그뿐 아니라 그때 그는 북군의 장군이었소. 모반을 일으키려면 언제든 일으킬 수가 있었던 게 아니오? 권세가 한창일 때 모반을 일으키지 않았던 사내가 고작 작은 고을에 틀어박혀 지금에 와서 모반을 하다니 그런 말이 어디 있소?”

그때는 문제도 이미 주발의 조사 내용을 읽고 혐의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그 자리에서 풀어 주려고 태후에게 약속을 했다.

“이번 일은 저의 잘못이었습니다. 옥리의 신문에 혐의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으니 곧 석방시킬 것입니다.”
문제는 즉시 주발을 석방하고 영지로 돌려보냈다.

감옥에서 풀려나온 주발이 말했다.

“일찍이 백만 대군을 통솔한 나였지만 옥리 하나가 그렇게 대단한 줄은 몰랐다.”

강후 주발은 영지에서 문제 l1년(기원전 196)에 죽었다. 시호는 무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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