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장기화로 디지털 전환(DX)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정부가 교육 기관에 ‘1인 1스마트기기’를 지원하는 정책을 폈다. 천지일보는 해당 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을 취재하고 교육청의 편파 행정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심층 보도를 기획했다. 제5보에서는 그동안의 논란을 정리하고 다시 한번 현재 사업 수행 방식의 문제를 짚어본다.
경쟁 없이 낙찰되기 쉬운 ‘협상에 의한 계약’
“수요기관·낙찰자 간 유착 형성 쉬운 방식”
기술평가 점수 보면 사실상 1등 정해져 있어
가격 경쟁 없고 대기업 간 담합 의혹도 나와
[천지일보=손지아 기자]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서울, 부산, 전남, 충남교육청 등 타 교육청에 비해 비교적 큰 예산을 가지고 해당 사업을 수행한 교육청이 대부분 선택한 계약 방식인 ‘협상에 의한 계약’에 대해 알아봤다.
◆‘중개사·로비스트’ 역할밖에 안 하는 SI 업체
해당 계약 방식에는 신기한 점이 하나 있다. 제조사가 직접 계약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SI 업체가 제조사의 제품을 골라서 협상 대상자로 앉는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컨소시엄을 구성하기도 하고 사전에 제조사와 논의를 마친다.
해당 사업에서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으로 가장 많이 낙찰받은 사업자는 KT다. KT는 가끔은 다른 제조사를 선택해 입찰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삼성전자의 제품을 가지고 들어간다. KT 외에 삼성전자의 제품으로 들어가는 사업자로는 롯데정보통신이 있다.
SI 업체들은 교육청이 요청한 대로 제안서를 작성해서 기술협상에 들어간다. 최근 1년간 협상에 의한 계약으로 낙찰된 사업자 중 기술평가 점수에서 항상 1위를 한 건 KT였다. 롯데정보통신은 KT와 같은 제품으로 들어가더라도 항상 기술평가에서 근소한 차이로 졌다.
이 외에도 에이텍시스템, 한진정보통신, 아이스크림미디어 등 수많은 SI 업체가 있지만 기술평가 점수에서 KT한테 밀렸다.
그렇다면 스마트기기 보급 사업에 SI 업체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제안서를 작성하고 기술협상에 참여해 계약을 맺는 역할을 한다. 부산시교육청에 따르면 협상 계약 낙찰자들은 계정작업, MDM 설치, 유지보수, A/S지원, 콜센터 운영 등의 사후관리를 철저히 수행해야 한다. 단 이 중 SI 업체가 하는 일은 없다. 컨소시엄에 함께 들어간 지역 업체가 수행하거나 제조사가 하는 일뿐이다. 즉 계약 체결 외에 이 사업에서 전문적으로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이에 삼성전자 같은 제조사들이 교육청과 직접 협상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학교를 위해 교육청이 단말기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제조사 외에 SI 업체와 협상을 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기술평가가 뭐길래 KT가 항상 1등일까
기술평가는 9인의 평가위원이 기능성·사용성·신뢰성 등 5가지 항목을 기준으로 평가해 점수를 매긴다. 문제는 기술평가(정성적 평가) 외에도 가격평가(정량적 평가)가 있지만 기술평가 점수가 거의 입찰 결과를 결정한다는 데에 있다.
대다수의 교육청이 협상에 의한 계약을 추진하면서 기술평가와 가격평가의 비율을 9:1로 설정했다. 기술평가 점수만 높으면 가격을 비싸게 써도 낙찰되고 기술평가 점수가 낮으면 가격으로 1원을 써도 떨어지는 구조다. 즉 가격 경쟁이 아예 이뤄지지 않는다.
입찰 전문가는 가격 경쟁 회피, 기술력 평가에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할 수 있는 문제를 지적했다. 제품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 제조사의 규모, 인지도, 브랜드 선호도 등에 영향을 받아 특정 업체에 대한 편향적 평가 등 불공정한 평가가 이뤄질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수요기관과 낙찰자 간 유착 가능성’을 의심하기도 했다. 수요기관은 기술능력평가를 직접 수행하거나 또는 조달청 평가를 의뢰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직접 평가하는 경우 평가위원을 수요기관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 또한 조달청에서 평가를 대행하는 경우에도 수요기관은 추천 명부를 작성해 조달청 감사담당관실에 평가위원을 추천할 수 있다. 수요기관이 낙찰자를 사실상 결정할 수 있다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다.

◆600억 사이 좋게 나눈 KT와 롯데정보통신
해당 입찰 방식에서 SI 업체끼리 담합을 했다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KT와 롯데정보통신은 부산시교육청의 스마트기기 보급 공공사업 입찰 과정에서 담합을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부산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KT는 롯데정보통신, TGS와 해당 교육청의 600억원짜리 스마트기기 보급 사업에 컨소시엄을 구성해 단독 입찰로 참여했다. 경쟁사가 없었기 때문에 유찰됐으며 부산시교육청은 KT와 수의계약을 맺었다.
KT와 롯데정보통신은 SI 업체로서 삼성전자 제품으로 스마트기기 사업 입찰에 참여하는 경쟁사다. 그동안의 타 교육청에서 진행한 사업에서는 각각 따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참여했고 경쟁해 왔다. 때문에 이 두 사업자가 경쟁하지 않고 한 팀이 된 것은 담합에 해당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부산시교육청은 삼성전자 제품밖에는 못 가지고 들어가는데 삼성전자 제품을 수주하는 두 대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들어가는 게 말이 되냐”며 “공정하게 둘이 따로 입찰 경쟁에 들어와야 하는데 컨소시엄을 맺어 유찰시킨 후 수의계약을 체결한 건 공정성에 어긋나 보인다”고 지적했다. 입찰에 참여한 사업자가 둘 뿐이니 두 사업자가 컨소시엄을 구성한 것은 고의적으로 유찰을 시켜 수의계약을 따내기 위함이 아니었냐는 주장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부산교육청 입찰 당시) KT와 롯데정보통신 모두 제안서를 각각 따로 준비해서 입찰에 참여했었다”며 “그런데 마감이 임박했을 때 갑자기 롯데정보통신이 입찰을 포기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증언했다.
이와 관련해 KT 측은 “담합인지 아닌지 저희가 판단할 순 없다”며 “컨소시엄을 구성한 거 자체를 담합으로 보기엔 어려워 보인다”고 입장을 밝혔다.
롯데정보통신 측은 “(컨소시엄은) 규정에서도 허용하고 있는 부분이고 원활한 사업 수행을 위해 함께 참여했다”고 말했다.
한편 부산시교육청은 크롬북 규격에서 삼성전자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조항을 넣어준 바 있다. 때문에 다른 스마트기기 제조사가 참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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