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기 서강대 언론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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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권 시기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뤄졌다. 입법과 사법은 전혀 감시 기구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국회는 청와대 거수기 역할을 했고, 검찰·법원은 청와대의 x가 됐다. 청와대가 수사와 재판의 가이드라인을 정해주면, 그대로 수용했다. 청와대가 내린 정책이라는 것도 시간과 공간 안에서 경험세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많은 감시 기구가 있으나, 그 감시 기구는 순기능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책은 현실이 아니라, 현실성이 없는 이념과 코드에 집착했다. 과학적 인과관계는 전무한 상태였다. 그 방법이 북한과 중국에서 쓰는 방법, 즉 ‘교조주의’로 접근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청와대가 마치 종교적 기구로서 작동했다. 숙의(熟議) 민주주의가 불가능한 체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청와대가 내린 정책은 많은 부분 신성불가침의 교시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었다. 청와대는 아예 비판은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脫원전 정책에서 보듯, 에너지 정책도 과학적, 경험적 통계로 ‘탄소 중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석탄, LPG 등 화석 에너지를 늘리는 쪽으로 갔다. 신재생 에너지, 즉 태양광, 풍력 등 효율성이 전혀 없는 것을 끝까지 고집했다. 하고 있다.

이들 정책의 난맥상은 바른사회TV 황승연 경희대학 사회학과 교수(10월 27일)의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분노의 실체: 전 국민 대상 여론조사 결과’에서 나타난다(8월 15일∼19일 리서치앤리서치조사, 남녀 2012명 대상, 신뢰수준 95% ±2.19%).

‘우리나라는 더 잘 살고, 나는 더 행복해졌다(부정 55.6%, 긍정 17.7%)’ ‘우리나라는 전 정부 때 보다는 대체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부정 46.4, 긍정 33.2 %)’로 나타났다. 더욱이 부정선거에 대해 ‘4.15 총선 소송을 기한 내에 처리하지 않은 것은 대법원의 직무유기이다(부정 11.3%, 긍정 58.2%)’를 나타냈다. 법치가 무너진 현실이었다.

그 충격의 결과는 경제 지표에서 나타난다. 2017년 3.2% 성장이 나타났지만, 2019년 2%, 2020년 -0.9를 기록했다. 김태기 전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문화일보(10월 26일) 보도에서 “국민 1인당 국가 부채는 임기 동안 50% 정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그는 “문 정부의 경제정책은 부실 자체와 날림 공사로 만든 집과 같다. 집 안으로 들어가 보면 비가 새고 얼마 가지 않아 무너질 지경이라 누가 대통령이 되든 차기정부는 잔뜩 짐만 지고 출범하게 생겼다. 정부가 법령과 세금 부과 그리고 재정의 권한을 함부로 휘두르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나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이 손해를 보게 됐다”고 했다.

한편 문 대통령이 25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경제가 성장률·수출·소비·투자·고용 등에서 모두 성공적이라고 자화자찬했다. 청와대는 진실을 말하는 대신, 있는 것을 없다고 하고, 없는 것을 있다고 한 것이다. 그 증거로 문화일보 사설(10월 26일)은 “한국은행은 26일 올 3분기 경제 성장률이 고작 0.3%에 그쳤다… 큰 논란을 빚었던 소득 하위 88% 재난지원금을 포함해 우려 34조 9000억원의 2차 추가경정예산이 투입됐는데도 예상했던 수준에 크게 못 미쳤다”라고 했다.

이렇게 황폐화된 상태에 놓여 있어도 공적 기구, 즉 국회와 법원은 전혀 견제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 공동체는 한없이 붕괴되고, 공적 기구의 신뢰는 땅에 떨어진 상태이다.

그렇다면 밖에서 감시하는 언론이 건전했는가? 체제 밖에 있는 언론까지 부역자, 나팔수 역할로 나날을 보냈다. 언론의 신뢰는 말이 아니다. 황승연 교수(10월 27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의 비판 기능을 부추기는 위헌 입법이라는 질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35%로, 위헌적 입법이라는 36.8%에 근접하는 높은 동의를 보이고 있다”라고 했다.

지난 8월∼9월 지면을 달구었던 ‘가짜 뉴스’는 정부가 먼저 만들어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포퓰리즘으로 여론조사 조작을 통해 ‘가까 뉴스’를 만들어냈다고 봐야 한다. 교통방송, 연합뉴스, KBS, MBC 등 공적 언론이 여론조작에 앞장섰다는 문제가 있었다. 공적 기구의 신뢰는 땅에 떨어져 있었다.

KBS 노동조합 성명(10월 21일)은 ‘KBS 뉴스9 친 민노총 악마의 편집방송 코로나 보도 민노총은 괜찮아?’에서 “민주노총, 2만 7000명 서울 도심집회… ‘비정규직 철폐·노동법 개정’(10월 20일)”, 한편 보수집회는 “‘마스크 벗고 음식 나눠먹고 소리치고’… 방역지침 무색했던 ‘광화문 집회’(2020년 8월 15일)”라고 했다.

이런 편향성 환경 하에, 언론중재위원회와 방송심의위원회는 가짜 뉴스, 공정성 훼손 색출에 나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신문윤리위원회가 제 기능을 한 것도 아니다. 기자협회보(10월 20일), ‘자유롭고 책임 있는 언론, 한국신문윤리위원회가 함께 만들어갑니다’에서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언론의 자유’ 수호와 ‘책임 있는 언론’ 구현을 위해 1961년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가 공동 설립한 국내 유일의 언론자율감시기구입니다.” 이는 구호일 뿐이었다.

그리고 언론중재법 개정에서 충격을 받은 국회는 자율규제를 만들도록 했다. 언론 현업 5단체가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위원회’ 발족을 서두르고 있다. 기구를 만든다고 감시가 되고, ‘가짜 뉴스’를 방지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물론 타율보다는 자율이 더 나은 것뿐이다.

언론은 자율기구 전에 반성할 일이 있다. 경실련 폭로에 의하면 ‘대장동 게이트’에서 ‘1조 6000억 돈이 증발됐다’라고 했다. 지금까지 언론은 경기경제신문이 폭로하기 전에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감시기구의 실종된 상태가 文 정권 내내 일상화됐다.

기자의 뉴스 인식은 시간과 공간에서 경험적으로 가능케 된다. 이 두 가지 요소가 빠지고, 이념과 코드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 청와대는 마음대로 선전, 선동물을 만들 수 있다. 청와대가 가짜 뉴스 진원지가 된다. 숙의 민주주의나 절차적 정당성을 포기한 나라가 됐다. 북한과 같은 ‘교조주의’ 방법으로 국가를 움직인 것이다.

인간에게는 ‘선험적 종합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나는 주관적 경험은 선험적 논리(a priori)로 이해를 할 수 있다. 설령 주관이라도 공감이 영역을 확보할 수 있다. 그래서 칸트는 자유를 우선시했다. 지금 나라가 어려울수록 기자는 자유를 강화시키고, 전문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 출입처가 아니라, 현장을 지키는 기자가 나라를 살리고, 청와대의 ‘자화자찬’의 가짜뉴스를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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