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 급증에도 공급 부진
세계 곳곳 다양한 부족 현상
연결된 공급망… 수출입 영향
브라질 가뭄에 세계 커피값 ↑
美 “성탄절에 못 살 선물 있다”
[천지일보=이솜 기자] 작년 이맘때 백신 출시를 앞두고 세계가 이런 파괴적인 경제 문제를 예상했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한 지 수개월이 지난 지금 지구촌은 서서히 대유행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공급망 붕괴’라는 심각한 재앙에 직면했다.
작년 바이러스의 빠른 확산은 전 세계 산업들의 봉쇄를 촉진했고 공장들이 문을 닫은 동안 소비자들의 수요도 감소해 전체적인 산업 활동이 축소됐다. 봉쇄가 풀리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이동 제한에 따른 외부 인력난과 핵심 부품 및 원자재 부족 등 다양한 이유로 세계 곳곳에서는 커피에서 석탄에 이르기까지 악화된 공급망 문제를 직접 겪고 있다.
◆중국: 석탄과 종이 부족
중국에서는 여러 악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위기에 빠지는 ‘퍼펙트 스톰’이 국내외 쇼핑객들과 기업들을 강타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에너지연구소의 미할 메이단 중국 소장은 중국의 에너지 부족이 종이, 음식, 섬유, 장난감에서부터 아이폰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18일(현지시간) BBC에 전했다.
문제는 주로 20개 이상의 지방에서 정전을 일으킨 전력 위기에서 비롯됐다.
중국 전력의 절반 이상이 전 세계적으로 가격이 오른 석탄에서 나온다. 이에 엄격한 가격 상한제를 시행하는 중국에서 에너지 회사들은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엄격한 환경 규정, 최근의 홍수로 인한 광산 타격 등도 전력난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는 상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더라도 공장들은 에너지 사용을 줄이거나 어떤 날에는 문을 닫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BBC는 분석했다.
◆미국: 장남감과 화장지 부족
최근 백악관 관계자는 “크리스마스에 사람들이 살 수 없는 상품들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휴지와 생수, 장난감, 새 옷과 반려동물 사료 등은 운송 문제의 영향을 받고 있다.
문제 원인의 일부는 미국 항구에서의 병목 현상이다. 미국의 선전 컨테이너 10개 중 4개는 로스앤젤레스와 캘리포니아 롱비치에 있는 두 개의 항구를 통해서만 들어온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는 한 척 이상이 항구 앞에서 기다리는 일조차 드물었으나, 지난달에는 73척의 선박이 로스앤젤레스 항구 밖에서 줄을 서야 했다.
일부 경우로는 다른 나라에서 코로나19 유행을 겪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스포츠 의류 대기업 나이키는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많은 제품을 만드는데 유행이 재발해 공장이 문을 닫아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윌리 시 교수는 BBC에 “물건이 생산되더라도 소매상에 전달하는 게 더 어려워졌다”며 “미국 소비자들의 지출이 급증하고 있지만 공장, 항만, 과부하된 도로 및 철도망의 혼란은 병목현상을 야기했다”고 말했다.
◆인도: 자동차와 반도체 부족
인도의 최대 자동차 제조업체인 마루티 스즈키는 전 세계적인 반도체 부족 때문에 생산량이 급감했다. 이 칩은 엔진 공급 및 비상 제동과 같은 기능을 관리한다.
반도체 부족은 한국과 일본이 앞서 재차 전염병 유행을 각각 겪으면서 발생했다. 휴대전화와 컴퓨터에도 사용되는 반도체에 대한 세계적인 수요는 5G 기술 채택으로 대유행 전부터 이미 증가하던 상황이었다. 대유행 중 재택근무로의 전환으로 사람들은 업무용 노트북이나 웹캠을 필요로 했고, 이는 또 다른 수요의 증가로 이어졌다.
인도로 들어오는 부품 부족은 인도 자체의 에너지 혼란으로 인해 더욱 악화하고 있다.
석탄 재고량이 위험할 정도로 줄고 있다. 인도의 코로나19 2차 유행 이후 경제 회복은 에너지 수요의 증가로 이어졌지만 세계 석탄 가격이 상승하면서 인도는 수입을 줄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전기요금 등이 오르는 등 각 가정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한다. 높은 인플레이션은 식품과 석유와 같은 필수품의 가격이 이미 올랐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브라질: 커피와 물 부족
브라질은 거의 1세기 만에 가장 심한 가뭄을 겪었는데 이는 커피 수확에도 영향을 미쳤다.
커피 수확 기간에 서리까지 겹쳐 커피 생산은 크게 줄었으며 높은 운송비용과 수송 컨테이너 부족으로 인해 이는 더 악화됐다. 브라질이 커피의 최대 생산국이자 수출국이기 때문에 커피 생산량 부족은 비용을 올리고 이는 전 세계 카페의 커피 값까지 이어질 것이다.
브라질은 대부분의 전력을 수력 발전을 통해 이용하는데, 가뭄은 이 나라의 에너지 공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자 에너지부 장관은 정부기관에 전기 사용량 20% 감축을 요청했다.
◆나이지리아: 조리용 가스 부족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천연가스 매장량을 가진 나이지리아에서는 요리에 주로 사용되는 액화천연가스(LNG)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세계적인 공급 부족으로 LNG 가격은 올해 4월과 7월 사이 거의 60% 상승해 많은 나이지리아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결과적으로 가정과 사업체들은 요리를 위해 훨씬 더 더러운 숯과 장작을 이용하고 있다.
통화 가치 하락과 LNG에 대한 세금 재도입으로 상황은 더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더 위험하더라도 저렴한 연료 대체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에 이 부족이 건강과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레바논: 물과 약품 부족
레바논에서는 물, 의약품, 연료 부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18개월 동안 레바논은 경제 위기를 견뎌왔는데 이 위기는 인구의 4분의 3을 빈곤으로 몰아넣었다. 이 나라의 경제는 코로나19가 강타하기 전 이미 문제가 있었으나 전염병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현재 연료 부족으로 정전이 잦고 기업과 가정은 고가의 민간 디젤 발전기에 의존하고 있다.
◆전문가 “공급망 붕괴 더 악화할 것”
전문가들은 공급망 문제가 “나아지기 전에 더 악화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18일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보고서에서 팀 위는 “공급망의 모든 지점에서 병목 현상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공급은 수요를 한 동안 따라잡을 수 없을 것”라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그룹인 ING의 중화권 이코노미스트 아이리스 팽은 “올해 3분기에 일부 항만 운영이 타격을 입었고 반도체 부족이 지속되면서 제조업이 큰 타격을 받았다”며 “운임이 여전히 높고 장비, 자동차, 통신기기 등 산업계에서는 반도체 부족이 여전히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공급망 붕괴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CNBC에 따르면 인베스코의 수석 글로벌 시장 전략가인 크리스티나 후퍼는 “공급망 중단과 높은 비용은 상대적으로 일시적이라고 본다”며 2022년 2분기까지는 반도체 생산이 정상적인 수준까지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그는 “추가적인 코로나19 유행이 있을 경우 공급망 위기는 단기적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