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가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옵티머스 펀드 사태 관련 2차 제재심의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가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옵티머스 펀드 사태 관련 2차 제재심의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분조위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

조정 성립 시 3000억 반환해야

NH투자 “분조위 결정 존중해”

이사회 결정에 달린 피해자들

배상받기까지는 시일 걸릴 듯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대규모 환매중단 사태가 발생한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와 관련해 최대 판매사인 NH투자증권에 투자자 원금 전액을 돌려주라는 금융당국의 결정이 나왔다.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적용한 결과로, 자산운용의 무역금융펀드(플루토TF-1호)에 이은 역대 두 번째 ‘100% 배상안’이다.

이에 NH투자증권은 당국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다만 당국의 기대와 달리 실제 투자금 보전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예정이다. NH투자증권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난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옵티머스 펀드의 수탁은행인 하나은행과 사무관리사인 한국예탁결제원간의 책임 배분 문제의 해결도 지난한 상황에서 투자자들과의 소송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5일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를 열고 NH투자증권이 판매한 옵티머스 펀드 관련 분쟁조정 신청 2건에 대해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민법 제109조)’를 결정했다고 6일 밝혔다. 투자원금 100% 반환 조건이다. 대표적인 유형을 심의했기 때문에 나머지 투자자들에게도 유사한 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는 민법에서 애초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만큼 중요한 사항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을 경우 계약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거짓·허위로 기재한 상품 정보를 판매사가 그대로 소비자에 전달해 착오를 유발했다는 의미다. 금융투자상품 분쟁조정에서 해당 법리가 적용된 것은 ‘라임 사태’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분조위는 환매중단된 옵티머스 펀드가 공공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의 확정 매출채권에 투자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판매사인 NH투자증권이 운용사가 작성한 투자제안서나 자체 제작한 상품 숙지자료 등으로 ‘공공기관 확정 매출채권에 95% 이상 투자한다’고 설명해 투자자의 착오를 유발한 것으로 인정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 일반 투자자들이 펀드 자금이 공공기관 확정 매출채권에 투자가 가능한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투자자에게 중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옵티머스 사태 당시 투자자들은 ‘공공기관이 망하지 않는 한 안전한 상품’이라는 투자 권유를 듣거나, ‘수익률 2.8%가 거의 확정되고 단기간(6개월) 운용할 수 있는 안전한 상품’이라는 설명을 듣고 펀드에 가입했다.

공공기관 확정매출채권이 발생하려면 공공기관이나 지자체가 발주처인 공사에 대해 건설사 등과 계약을 한 뒤 특정 기한이 지난 시점에 대금(매출)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하고, 건설사는 향후 들어올 매출을 근거로 채권을 발행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계약법에 따라 공공기관은 공사대금을 검사완료일(또는 청구일) 후 5일 이내에 지급하게 돼 있다. 이는 만기가 수개월인 공공기관 매출채권을 양도받아 펀드 투자대상에 편입하는 구조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이에 따라 가짜 매출채권 투자를 앞세워 투자자를 모은 옵티머스펀드는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로 이어졌다. 환매가 중단된 46개 옵티머스 펀드(5151억원) 중 84%(4327억원)이 팔린 곳이 NH투자증권이었다. NH투자증권이 판매한 옵티머스 사모펀드는 35개로 모두 환매가 중단돼 개인 884좌, 법인 168좌 등 다수의 투자 피해자가 발생했다.

분조위는 옵티머스 펀드 판매 계약을 취소하고 계약 상대방인 NH투자증권이 투자원금 전액을 반환하도록 권고했다. 단 2건에 대해 원금 전액 반환 결정을 한 것이지만 대표적인 유형을 뽑아 심의했기에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에게 100%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

분쟁 조정은 당사자인 투자자와 금융사인 NH투자증권 모두가 조정안을 받은 후 20일 이내에 수락해야 조정이 성립된다. 강제성은 없으나 받아들일 경우 재판상 화해와 같은 혀력이 생긴다. 조정이 성립될 경우 3000억원 규모의 투자원금이 반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NH투자증권은 이날 조정 결과 발표 후 “분조위의 조정안 결정을 존중하며 투자자 보호를 위해 최선의 방안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NH투자증권은 조만간 임시 이사회를 소집해 조정안 수용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다만 이사회가 조정안을 수락하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간 NH투자증권은 펀드 수탁사(하나은행), 사무관리회사(예탁결제원)가 연대 책임을 지는 다자배상안이 현실적으로 투자자 보호에 더 효과적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옵티머스 사태가 벌어지는 과정에서 수탁은행인 하나은행과 사무관리사인 예탁결제원의 책임이 있기에 NH투자증권만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전날 정영채 NH투자 사장은 금융위원장과 금융투자업계 CEO(최고경영자) 간담회 이후 “계약취소로 판단된다면 법리적인 이슈가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이 책임져야 할 서비스 회사들에게 면책을 주는 효과가 발생한다”며 “최소한 분조위의 결정이 금융회사 간 다툼을 왜곡시키는 일만 없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옵티머스 사태 당시 펀드 자산운용을 책임졌던 하나은행은 2018년 세 차례의 펀드환매 부족이 발생했을 때 지급준비계좌에서 돈을 빼 이를 막아줬던 사실이 지난해 수사 등 과정에서 밝혀졌다. 예탁결제원도 옵티머스가 자행한 펀드재산명세서 위조에 기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번 분조위 결정으로 금감원은 발을 빼게 됐지만 정작 문제의 해결이 얼마나 빠르게 이뤄지 미지수다. NH투자증권은 이사회 결의를 거쳐 분조위 조정안 수용 여부를 결정한다. 다만 자체 법률자문 과정에서 ‘착오 계약취소’가 무리가 있다는 의견을 받은 만큼 전액배상 권고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적어보인다.

분조위 조정안을 NH투자증권이 수락하지 않으면 조정은 성립되지 않는다. 결국 손해배상과 관련해 투자자와 NH투자증권 사이의 골은 법원에서 정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개 소송 절차가 짧아도 수년인 것을 감안하면 금감원의 전망과 다르게 실제 투자자들이 배상금을 받기까지는 시일이 더 걸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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