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전경 유리원판 필름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10.9
파리 전경 유리원판 필름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10.9

파리 전경 유리원판 필름
Eiffel Tower and Trocadero Palace from Arch of Triumph, Paris, France.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과 트로카데로 왕궁(궁전)이 멀리 보이는 유리원판 필름이다. 사진은 개선문(아크 드 트라이엄프: Arc de Triomphe)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개선문은 파리 시내 북서부 샤를 드 골 광장 중앙에 서 있다.

개선문이 있는 광장은 방사형으로 뻗은 12개의 도로가 마치 별과 같은 모양을 이루고 있어 에투알(Etoilé, 별) 광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개선문은 프랑스군의 승리와 영광을 기념하기 위해 나폴레옹 1세의 명령으로 건립됐지만, 정작 나폴레옹 1세는 1821년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숨을 거둬 완성된 개선문을 보지 못했다.
 

 

돈의문 성벽 근처에 위치한 프랑스 공사관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10.9
돈의문 성벽 근처에 위치한 프랑스 공사관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10.9

돈의문(서대문) 성벽 근처에 위치한 프랑스 공사관

서울 성곽의 4대문 중 서쪽 큰 문으로 일명 서대문(西大門)으로 불린 돈의문 근처에 위치해 있던 프랑스 공사관의 모습이다.

당시 정동 일대는 프랑스 공사관 외에도 러시아 및 영국, 독일 공사관 등이 자리 잡고 있어 명실상부 각국 외교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에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정동 지역을 일컬어 ‘공사관 구역’ 또는 ‘공사관 거리’라고 불렀다.

당시 러시아 공사관은 현재 탑 부분이라도 남아있지만 프랑스 공사관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다만 현 창덕여중 운동장 자리가 당시 프랑스 공사관이 들어섰던 터임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있을 뿐이다. 표지석에는 ‘RF 1896’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1896년 이 자리에 프랑스 공사관을 세우다’라는 의미다. 당시 외국인들의 기록에 따르면 각 공사관 건물 중 프랑스와 러시아 공사관 건물이 제일 아름다운 서양식 건물로 꼽히기도 했다.

* 1893년 5월 7일자 프랑스 공사관 문서에 의하면 고종은 서울 주재 프랑스 공사 프랑댕(Hippolyte Frandin)에게 7년 후에 열리는 프랑스 만국박람회 참가 의사를 밝히면서 “준비를 서두르는 바람에 결과가 좋지 못했던 시카고 박람회 때와는 달리 본인(고종)이 직접 파리 박람회 준비를 지휘하고, 왕가의 일원을 조선 대표로 참가시키겠다”고 했고 약속대로 명성황후의 조카인 민영찬을 파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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