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강 주변에 늘어선 각국 전시관의 모습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1.2.1
센강 주변에 늘어선 각국 전시관의 모습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1.2.1

센강 주변에 늘어선 각국 전시관의 모습

1900년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 당시 센강 주변에 늘어선 각국 전시관의 모습이다. 만국박람회에 참석한 각국 전시관의 모습이 다채롭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는 우리나라도 참가하면서 대한제국을 세상에 알리는 홍보의 장이 되기도 했다.

1900년 4월 14일부터 11월 12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세계박람회)는 총 관람객수가 5000만명에 달했으며, 많은 건축물 중 ‘그랑드 루 드 파리 대관람차’ ‘마트료시카 인형’ ‘디젤 엔진’ ‘유성영화’ ‘에스컬레이터’ ‘텔레그라폰(최초의 자석식 녹음기)’ 등이 소개됐다. 당시 만국박람회에서 널리 선보였던 건축양식은 ‘아르누보’였다.

우리나라도 당시 최초로 독립 국가관을 세우고 참가한 기념비적인 박람회로 기록됐다.

1900년 발간된 폴 제르의 저서 ‘1900년’에 소개된 한국 전시관의 모습을 짧게 소개한다.

“한국관 전시는 프랑스 건축가 페레(M. E. Ferret)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인 자작이며 만국박람회 한국박물국 사무총무대원(한국측 집행위원)인 미므렐(Mimerel)에 의해 주도되었다. 한국관은 궁궐과 종묘 등 궁전 내의 여러 건축물 중 하나를 그대로 복제해서 박람회 위원회 건축가에 의해 지어졌다. 난간과 출입구를 을 사각형 주춧돌이 받치고 있는 구조이다. (중략) 1890년까지도 아시아 속에서 고립되었던 조선이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참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커다란 변화인가를 볼 수 있겠다.”

이외에도 당시 신문 ‘르 프티 주르날(Le Petit Journal)’은 전체 8개 쪽 중 1개 면을 대한제국관 화보로 꾸몄다. 궁궐 모양의 한국관 우측 상단에 태극기가 펄럭이는 그림이 지금도 전해진다.

 

샹젤리제 거리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1.2.1
샹젤리제 거리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1.2.1

샹젤리제 거리

샹젤리제 거리는 파리의 중심가로 센강의 우안을 따라 펼쳐진 콩코르드 광장에서 북서쪽으로 개선문까지 길게 뻗은 1880m 가량의 직선도로다. 그리스신화에서 낙원이라는 의미의 ‘엘리제’를 따와 샹젤리제(Champs-Élysées)로 명명했으며 ‘엘리제의 들판’이라는 뜻을 갖는다.

17세기에 왕비 마리 드 메디치(Marie de Médicis)가 소위 ‘여왕의 산책로’라 불리던 튈르리 정원에서 센강을 따라 걷는 산책로를 조성한 것이 샹젤리제 거리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667년에 프랑스 양식의 정원을 창안한 ‘르 노트르(Le Nôtre)’가 가로수를 심고 로터리를 만들면서 보행도로로 확장, 1709년부터 샹젤리제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 1724년 산책로가 ‘개선문’이 있는 위치까지 연장됐다.

지금은 에르메스(Hermès), 루이뷔통(Louis Vuitton), 샤넬(Chanel) 등 고급 의상실과 부티크 등이 있어 쇼핑명소로 유명하며, 프랑스인들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 산책로를 걷다보면 대통령 궁으로 사용되는 ‘엘리제 궁전(Palais d`Elysee)’과 ‘그랑팔레(Grand Palais)’를 볼 수 있다. 그랑팔레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세운 건축물로 안에는 다양한 미술 전시회와 과학박물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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