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오지랖

강 수

고향집에 갔다가 집으로 오는 길

귀 멀고 눈먼 할머니에게 하직 인사를 하느라 곤욕이다

큰 소리로 인사를 해도 못 알아들으신다  

한참 실랑이 끝에 인사를 마치는데

지금 캄캄한데 왜 이렇게 늦게 가느냐고 또 걱정이시다

지금 대낮이라고 또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는데

할머니는 지금 캄캄한데 무슨 대낮이냐고 걱정이시다

불 켜고 넘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올라가라며 신신당부다  

눈먼 할머니

득도하셔서 환한 대낮에도 캄캄한 어둠만 보이시는가보다

할머니의 말씀들이 켜 놓은 등불들

예전에는 어둠에만 켜 있더니

이제는 환한 대낮에도 켜져 있다.

 

[시평]

이 시는 고향집 할머니를 통한 세대 간의 이해와 사랑 그리고 노년의 삶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시의 첫 부분은 화자가 고향집을 떠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귀가 멀고 눈이 먼 할머니와의 소통의 어려움은 세대 간의 간극과 시간이 만들어낸 거리감을 상징한다. 특히 “지금 대낮이라고 또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는데”라는 구절은 물리적 시간과 심리적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노년의 삶을 암시한다. 눈먼 할머니에게는 대낮마저도 캄캄한 어둠으로 느껴지며, 이는 단순히 시각적인 제한을 넘어 삶의 불확실성과 고독을 상징한다. 시의 후반부에서는 할머니의 말씀이 “켜 놓은 등불들”로 묘사된다. 이는 삶에 대한 지혜와 사랑이 담겨 있음을 나타낸다. 예전에는 어둠 속에서만 빛나던 등불이 이제는 대낮에도 켜져 있다는 표현에서 할머니의 사랑과 보호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항상 화자의 곁에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도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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