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단위 분리제도 적극 활용
하청노조 ‘실질 교섭권’ 보장
사용자성 판단 노동위가 지원
노조 “창구단일화 폐기” 반발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우원식 국회의장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8회 국회(정기회) 본회의에서 ‘방송4법·노란봉투법·민생회복지원금법’ 재표결을 마치고 부결을 선언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9.26.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우원식 국회의장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8회 국회(정기회) 본회의에서 ‘방송4법·노란봉투법·민생회복지원금법’ 재표결을 마치고 부결을 선언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9.26.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고용노동부가 내년 3월 시행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2·3조 개정안)’의 안착을 위해 현행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의 틀 내에서 ‘교섭단위 분리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담은 노동조합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25일부터 내년 1월 5일까지 입법 예고했다.

노란봉투법 개정으로 하청 노조의 원청과의 교섭이 가능해졌으나, 그 절차가 불명확하다는 현장의 지적을 해소하고 하청 노조의 실질적인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후속 조치에 나선 것이다. 노동부는 법적·현실적 측면을 종합 검토한 결과, 현장의 혼란을 방지하고 안정된 교섭체계를 구축하려면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우선 진행하되 교섭단위 분리제도를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현행 노동조합법에는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2개 이상의 노조가 있을 경우 노조는 교섭대표 노조를 정해 교섭을 요구해야 하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가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는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저해할 수 있다는 노동계의 반발이 있어왔다. 이에 노동부는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 하청 노조 간의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자율적으로 우선 진행하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노사가 자율적으로 합의하기 어려울 시 노동위원회가 교섭 단위의 통합 또는 분리를 결정하는 교섭단위 분리제도를 적극 활용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정부의 교섭단위 분리 원칙은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는 교섭권의 범위, 사용자의 책임 범위, 근로조건 등에서 서로 차이가 크므로 원칙적으로 교섭단위를 분리한다. 아울러 하청 노조 간에도 실질적 교섭권 보장과 안정적 교섭체계 구축을 위해 직무, 이해관계, 노조 특성 등을 기준으로 통합 또는 분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노동부가 제시한 예시로는 ▲개별 하청별 분리 ▲직무 등 유사 하청별 분리 ▲전체 하청노조 통합 분리 방식 등이 있다. 교섭단위가 분리되면 이후 분리된 단위별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다시 진행해 각각의 교섭대표 노조를 결정하게 된다. 노동부는 이 과정에서 소수 노조가 배제되지 않도록 자율적인 공동교섭단 구성, 위임·연합 방식의 자율적 연대를 지원할 계획이다.

노동부는 이번 시행령 개정안이 원청과 하청 노조 간 이해관계가 달라 교섭단위 분리의 필요성이 더 높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노동위원회가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기존 판례 등에서 제시됐던 ▲이해관계의 공통·유사성 ▲타 노조에 의한 이익대표의 적절성 ▲안정적 교섭체계 구축 가능성 ▲갈등 가능성 및 당사자들의 의사 등 다양한 고려 요소를 추가했다.

특히 노동부는 교섭단위 분리 및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에서 노동위원회가 특정 근로조건에 대해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하면 원청이 사용자로서 교섭 절차를 진행하도록 해 교섭 전 사용자성 여부를 둘러싼 노사 분쟁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됐음에도 정당한 이유 없이 교섭에 응하지 않는다면 지방고용노동관서의 지도 및 부당노동행위 처벌을 통해 교섭이 촉진될 수 있도록 한다. 아울러 사용자성 범위에 대해 의견이 불일치하는 경우 가칭 ‘사용자성 판단 지원 위원회’를 통해 교섭 의무 여부 판단을 돕는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개정안은 노사자치의 원칙을 교섭 과정에서 최대한 살리면서 개정 노조법의 취지에 따라 하청 노조의 실질적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고 안정적인 원청 사용자와 하청 노조 간 교섭 틀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것”이라며 “연내 정부의 사용자성 판단 및 노동쟁의 범위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산업현장에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노사가 법 시행 전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의 이 같은 노력에도 개정 노조법을 둘러싼 노사 양측의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노동계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가 소수 노조의 참여를 배제하고 사용자가 교섭을 회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법 개정 취지를 무력화하는 시행령 개악을 즉각 중단하고 폐기하라”며 “노동부가 진정 하청 노조의 교섭권을 보장하려면 창구 단일화를 강제하지 말고 자율교섭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동부 안은 원청과 1차 창구 단일화, 하청 내 2차 창구 단일화 절차를 연속적으로 요구해 사용자가 교섭을 회피할 길을 열어준 것”이라며 20여년의 투쟁 끝에 쟁취한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을 다시 박탈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경영계에서는 교섭단위 분리제도가 확대되면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고 이미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원청과 원청 노조 간의 교섭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노동부는 연내 사용자성 판단기준과 교섭절차에 관한 지침·매뉴얼 등을 마련해 발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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