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기업성장포럼 기조발언
“AI센터 1기 짓는 데만 70조”
“기존 금융구조론 대응 불가”
“국민성장펀드 150조 부족”

[천지일보=김정필 기자]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20일 “AI·반도체·바이오 등 신산업의 대규모 투자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금융·자본 조달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며 “금산분리 완화가 목적이 아니라 초대형 투자를 가능케 하는 새로운 제도적 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태원 회장은 이날 여의도에서 열린 ‘제2차 기업성장포럼’ 기조발언에서 “한국 경제가 맞닥뜨린 기술환경은 과거와 차원이 다르다”며 “AI 데이터센터 1기를 짓는 데만 70조원이 투입되는 시대에 한국은 기존 금융구조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미국과 중국은 각각 100기, 300기 건설을 계획하고 있지만 한국은 10기만 추진해도 700조원이 필요하다”며 “이 속도전에서 뒤처지면 기술주권과 국가안보까지 영향을 받는다”고 경고했다.
최 회장은 ‘투자 속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AI 경쟁은 누가 먼저 기술과 시장을 장악하느냐의 싸움이고, 선점 국가와 후발 국가의 차이는 종속 관계로 이어질 수 있다”며 “지금의 자본시장 구조로는 이 속도에 맞출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 ‘새로운 투자 플랫폼’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국민성장펀드 150조원 규모가 논의되고 있지만, 이 정도로는 미국·중국 대비 투자 격차를 좁히기 어렵다”며 “3·4·5호 펀드를 조성해 초대형 프로젝트를 전담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의 펀드 조성 방식으로는 장기·대규모 투자가 어려운 한국 시장의 특성을 고려한 대안으로, 재계에서도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최 회장은 최근 논쟁이 된 금산분리 완화에 대해서도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기업이 은행을 소유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새로운 투자 제도가 마련되지 않으면 논의가 금산분리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구조적 상황을 설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가 바라는 건 제도 완화가 아니라, 신산업에 필요한 자본 규모를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금융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AI 전환(AX)을 주도할 새로운 형태의 기업군이 필요하다”며 “AI 기술로 무장한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했다. 공정거래 규제 방향도 ‘기업 규모 중심’에서 ‘성장성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성장 시대가 아닌 AI 초격차 시대에는 기업의 크기로 규제하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성장하는 기업을 밀어주는 구조여야 국가 경쟁력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중견기업계도 같은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은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인센티브가 사라지고 각종 규제만 늘어난다”며 “이 구조에서는 기업이 성장할 유인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견기업을 5800개에서 2만개로 확대하면 양질의 일자리 200만개 창출이 가능하다”며 과감한 규제 개편을 촉구했다. 그는 상속세·증여세 완화를 포함한 ‘지속 가능한 기업 성장 플랫폼’ 구축도 주문했다.
정부도 재계의 요구에 호응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업 규모에 따라 규제가 강화되는 현행 제도는 성장 시대에 맞지 않는다”며 “성장하는 기업에 집중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법·제도 정비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또 “벤처 생태계가 글로벌 대기업으로 커나갈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정치권도 제도 재정비 필요성에는 공감대를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신산업 시대에는 새로운 금융투자 질서가 필요하다”며 여야 간 협의를 통해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들을 재정비해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