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정부는 ‘AI 세계 3강 도약’을 목표로 AI 인재양성 청사진을 발표했다. 대학·대학원의 AI 관련 정원을 확대하고, ‘AI 중점학교’를 현재 730곳에서 2028년까지 2000곳으로 늘리기로 했다.
또 5년 반 만에 학·석·박사 과정을 마칠 수 있는 ‘패스트트랙’을 신설하고, 세계적 석학이 정년 제한 없이 연구할 수 있도록 ‘국가석좌교수제’도 추진한다.
모든 국민이 일상에서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생애주기별 AI 교육도 강화한다. 중등교육 단계에서는 AI 특화 마이스터고를 새로 지정하고, 직업계고의 AI 교과목 비율을 2030년까지 50%로 높일 예정이다. 거점 국립대학은 ‘AI 거점대학’으로 집중 육성하며 내년 초·중·고 AI 관련 교육 예산으로 1조 4천억원이 투입된다.
야심 찬 정부 청사진이지만 교육 현장의 반응은 차갑다. 2020년 이후 AI·디지털 인재 육성 대책이 여러 차례 발표됐지만 정작 학교 현장은 예산과 교원 역량, 교육 인프라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예산이 뒷받침 안 된 말뿐인 ‘청사진’이 또다시 공허한 구호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예산 규모와 배분 구조는 심각하다. 내년도 AI 관련 정부 예산은 10조 1천억원이지만 이 중 교육부가 직접 AI 인재양성에 투입하는 예산은 1.2%(1246억원)에 불과하다.
교육부 전체 예산 106조원과 비교하면 0.1% 수준이다. ‘AI 인재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실제 예산 규모는 미미하다. 청사진과 예산이 따로 노는 셈이다.
AI 인재양성의 핵심 장애 요인은 예산 부족과 노후화된 기자재, 그리고 열악한 교육 환경이다. 첨단 AI 교육을 위한 기자재와 시설 개선이 시급하며 교원의 역량 강화와 연구 인센티브 제도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예산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국회미래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여년간 글로벌 AI 경쟁의 핵심은 ‘정부-산업-학계의 협력’으로 구축된 ‘개방형 인재 생태계’였다. 중국은 이러한 모델의 대표적인 사례다.
초·중등부터 AI 기초역량을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해, 최소한의 학습 기반을 확보했다. 베이징대·저장대 등 주요 대학은 단순 성적이 아닌 기초과학 역량 평가로 AI 전공 인재를 선발, 장학금·해외연구·연구실 배정 등 실질 혜택을 제공한다.
또한 중국은 우수 인재 유입을 위해 정부·지방·기업이 협력해 파격적인 연봉과 생활 지원 등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전 세계 AI 논문의 23.2%를 중국이 차지하며 미국(9.2%)을 압도했다. AI 관련 등록 특허도 세계의 70%를 점유하며 AI 기술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세계 상위 100대 AI 연구자 중 단 1명만이 포함돼 있다.
AI 인재양성의 성패는 교육 현장의 여건 개선과 제도적 기반 강화에 달려 있다. 예산 확충을 통해 기자재와 시설을 개선하고, AI 교원 양성과 재교육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교육의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표준화된 AI 교재를 개발·보급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정부가 ‘AI 디지털교과서’를 단순한 ‘교육자료’로 격하한 것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교과서의 위상은 AI 기초학습의 체계성과 표준화를 보장하는 핵심이다.
최근 연세대·고려대의 비대면 강의, 서울대의 대면 강의에서도 AI를 활용한 집단 부정행위 사례가 발생했다. 이는 AI 기술의 그림자이자, AI 시대에 맞는 윤리적 가이드라인과 교육지침 부재의 결과다. AI 활용을 전면 금지하거나 방관할 것이 아니라, AI를 올바르게 활용하도록 가르치는 교육 철학의 전환이 필요하다.
AI 인재양성의 목표는 단순히 기술자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 융합형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예산과 청사진이 조화를 이루는 현실적인 정책 추진이 절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