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총리 대만 개입 발언하자
중국, 연일 고강도 비난 나서
자국민에 일본행 자제 권고
中외교관 “목 베겠다” 위협도
정치·민족주의 정서 얽혀 있어
양국 갈등 단기 해결은 난망

지난달 31일 경주에서 열린 제32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출처: 뉴시스)
지난달 31일 경주에서 열린 제32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중국과 일본이 대만 문제를 두고 정면충돌하며 양국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중국의 대만 공격 시 일본의 대응 가능성을 언급하자 중국 외교관이 “그 더러운 머리를 베어야 한다”는 발언까지 하는 등 거칠게 반발했다. 중국은 자국민에게 일본 방문 자제령까지 내리며 외교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전랑(戰狼, 늑대 전사) 외교’가 사실상 재가동됐다고 평가했다.

갈등의 출발점은 지난주 일본 국회였다. 지난 7일 중의원(하원)에서 야당 의원이 대만을 둘러싼 ‘존립 위기 사태’ 가능성을 묻자 다카이치 총리는 “전함과 무력 사용이 수반된다면 어떻게 보더라도 ‘존립 위기 사태’가 될 수 있다”고 답했다. 일본의 안보법에 따라 이 사태가 발생하면 자위대는 동맹을 위한 무력 대응이 가능해진다. BBC는 이 발언이 일본 정부가 그동안 모호하게 유지해 온 대만 관련 원칙을 흔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내외로 그의 발언이 파장을 일으켰지만 다카이치 총리는 해당 발언을 철회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중국 외교부는 다카이치 총리 발언을 “악질적이며 중국 내정에 대한 중대한 간섭”이라고 비판했다. 중국은 자체 통치되는 민주주의 국가인 대만을 자국 영토의 일부로 간주하고 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14일 쑨웨이둥 부부장(차관)은 가나스기 겐지 주중 일본대사를 초치해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은 국제법과 국제관계 기본 준칙을 중대하게 위반하고 전후 국제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며 하나의 중국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항의했다. 그는 “1억 4천만 중국인은 이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카이치, 대중 강경 기조 고수

이번 사태가 중국의 ‘전랑 외교’의 복귀로 비치는 핵심적인 계기는 쉐젠 주오사카 중국 총영사의 발언에 있다.

그는 지난 8일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다카이치 총리 발언 관련 기사를 공유하면서 “그 더러운 목을 벨 수밖에 없다”고 적었다. 이 게시물은 곧 삭제됐지만 일본 정부는 “극히 부적절하다”고 항의했고 대만도 “위협적 발언”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중국은 “다카이치의 잘못되고 위험한 발언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라고 맞섰다.

뉴욕타임스(NYT)는 “양국 간 짧았던 화해 분위기는 사실상 소멸했다”며 “전랑 외교가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고 진단했다.

전랑 외교는 2020년 전후로 두드러진 중국의 강경 외교 스타일로 외교관과 관영 매체 인사들이 SNS와 기자회견에서 거침없는 언어로 상대국 비판에 맞대응하는 방식이다. ‘전랑(戰狼)’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인기 액션영화에서 따왔으며 국가 이익이 침해된다고 판단될 경우 정제되지 않은 표현도 서슴지 않는 것이 특징으로 지적돼 왔다. 시진핑 지도부가 집권 초기부터 강조해온 ‘국가 핵심 이익 수호’ 기조와 맞물린다. 한때 중국 외교의 대표적 이미지로 자리 잡았지만 최근 몇 년간 서방과의 갈등이 심화하면서 중국이 이를 다소 누그러뜨리려 한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번 다카이치 총리 발언을 둘러싼 대응에서는 과거의 강경한 수사와 공개적 모욕, 선을 넘는 표현 등이 다시 등장해, 중국이 외교적 긴장을 감수하더라도 대만 문제와 역사 문제에서는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겠다는 신호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관영 매체와 민족주의 인사들도 다카이치 총리 비난에 가세했다. 중국 관영 방송인 CCTV 계열 계정은 “그녀의 머리가 당나귀에게 걷어차인 것이냐”고 조롱했고 중국 국영지 인민일보는 다카이치 총리가 “무책임하게 입을 놀렸다”고 비난했다. 후시진 전 환구시보 편집장은 SNS에서 다카이치 총리를 “사악한 마녀”라고 부르며 “중국과 일본 여론 간 상호 증오의 새로운 폭발을 성공적으로 점화했다”고 비난했다.

중국 국영방송 CCTV는 이번 주 논평을 통해 대만 문제에 개입하는 일본 지도자들은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다”고 경고했다. 논평은 또 “불씨를 지피는 자는 그 불에 타게 될 것”이라며 다카이치 총리의 ‘존립 위기’ 언급을 1931년 일본의 중국 동북부 만주 침공에 비유했다.

홍콩의 정치학자 장 피에르 카베스탄은 지난 12일 뉴욕타임스(NYT)에 이번 중일 소동을 ‘전랑 외교로의 명확한 복귀’로 묘사했다. 그는 “다카이치 총리가 의회에서 말한 것은 진실이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공격한다면 일본이 분쟁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며 “지도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카이치 총리는 12일 기자들과 만나 자신의 발언이 ‘가정적’이었다며 “정부의 기존 입장과 일관성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향후 국회에서 특정 상황을 언급하는 데 신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보수적 성향과 대중 강경 기조는 이미 명확하다. 다카이치 총리는 올해 초 대만을 방문해 방위 협력을 강조했고 지난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도 대만 대표를 만나는 등 일관되게 대만을 옹호해왔다.

◆ 중국, 일본 여행 자제령까지 발동

중국의 강경 대응은 외교적 비난을 넘어 양국 교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15일 자국민에게 “당분간 일본 여행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일본 내 중국인 대상 공격 사례와 다카이치 총리의 “잘못된 발언”을 이유로 들었다.

이날 주일 중국 대사관은 공식 위챗 계정을 통해 “최근 일본 지도자가 대만에 대해 노골적으로 도발적인 발언을 해 양국 간 인적 교류 분위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이러한 상황이 일본에 거주하는 중국 국민의 개인적 안전과 생명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올렸다.

이에 일본의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은 중국에 즉각 항의하며 “양국이 대화를 이어가야 할 때에 오히려 교류의 장을 좁히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의견 차이가 있기 때문에야말로 다층적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 대사관 공지를 보면 일본행 여행 자제 요청은 최근 1년간 반복된 안전주의 권고보다 훨씬 강한 표현이다. 여러 중국 항공사들은 이미 일본행 항공권 무료 수수료 환불을 안내하고 있다고 AP는 전했다.

일본은 중국 관광객에게 매우 인기 있는 목적지로, 중국 관광객 감소는 일본 관광·소비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번 조치가 실제 여행 수요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대만 둘러싼 전략적 모호성 흔들

대만 문제는 역사적·전략적 측면이 모두 얽혀 있다. 대만은 189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지였으며 중국은 종전 이후 대만이 “중국으로 돌아왔다”고 주장해 왔다. 중국 공산당은 대만을 통치한 적이 없음에도 자국 영토로 간주하며 필요시 무력 통일을 공언하고 있다.

이와 관련 천빈화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대변인은 지난 12일 “일본은 대만 문제와 관련하여 중국 인민에 대해 역사적 책임을 지고 있으며 50년간의 대만 식민 통치 기간 말할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80년 전, 우리는 일본 침략자를 물리치고 대만을 수복했으며 그들의 점령과 약탈을 끝냈다”며 “만약 누군가 다시 중국의 핵심 이익에 도전하거나 대만과의 통일을 저지하려고 시도한다면 베이징은 결코 그것을 용납하거나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사태는 미국과 일본이 유지해 온 정책을 흔드는 측면도 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은 이전에 미래의 중국군 대만 공격에 대한 의도를 모호하게 남겨두는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 정책을 고수해 왔다.

다카이치 총리의 초기 발언은 대만에 대한 일본의 오랜 지지 입장을 크게 수정한 것은 아니지만 ‘존립 위기 사태’라는 맥락에서 대만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피했던 이전 정책과는 결별한 것이다. 심지어 다카이치 총리의 정치적 멘토이자 대만에 대해 매파적 견해를 공유했던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조차도 대만 위기에 일본이 어떻게 대응할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피해왔다.

양국 모두 국내 정치와 민족주의 정서가 얽혀 있어 이번 갈등의 단기간 해결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총리는 경제난 속에서도 방위비 증액과 대미 협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중국은 내부적으로 반일 여론이 강하게 결집된 상황이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는 언행은 절대 용인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고, 일본 정부 역시 “부적절한 위협에는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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