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지난 10월 10일 노동당 창당 80주년을 기념하는 평양 5.1경기장 대집단체조에서 북한 노동당은 선대 수령들의 ‘김’ 자도 붙이지 않고 사진 1장도 담지 않아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가히 북한판 문화대혁명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이제 김정은이 선대와 단절하고 자기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의 선언이었다. 개인숭배를 통치의 주된 근간으로 삼는 전체주의 국가 북한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빼는 일은 어느 누구도 상상해 본적이 없는 통치의 서사다. 북한 노동당 간부들부터 입을 딱 벌렸다니 어찌 노동자 농민들이 당황망조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오히려 우리 쪽이 김정은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향후 한국과 미국 군 당국이 곧 발표할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핵 공격이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는 내용이 삭제된다고 알려졌다.

이 표현은 2022년부터 매년 SCM 공동성명에 담겼다. 다만 공동성명에 북한 비핵화 등에 대한 언급은 그대로 남는다고 한다. 그러나 북핵 위협의 핵심 원인인 김정은 통치자를 직접 겨냥한 문구가 사라지는 것이다.

결국 이런 용어의 순화는 남북 정상회담을 바라는 이재명 정부와 김정은과 만나 노벨 평화상을 타려는 트럼프의 욕심이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밖에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다.

현 정부는 김정은과의 회담을 위해 한미 연합 훈련을 비롯해 김정은이 싫어할 만한 군 훈련도 미뤄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에 대해서도 “김정은 위원장이 아주 오랫동안 잘 참은 것 같다”고 표현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보겠다며 대북 제재 해제까지 거론했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물론 모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이전의 발언들로서 그래도 북한 정권이 APEC에 어떤 형태로든 성의를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발언한 립서비스들이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핵 공격을 막을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핵 단추를 누를 독재자가 자신도 100% 죽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하는 것이다. 만약 김정은이 자신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오판 가능성이 존재하게 된다.

‘북이 핵을 쓰면 김정은은 죽는다’는 내용이 없어진 것을 김정은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나. 한미 당국자들이 각각 정치적 이유로 김정은 눈치를 본 대가를 우리 국민이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올해 공동성명에서는 ‘주한 미군을 현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내용도 제외된다고 한다. 이 표현은 트럼프 1기였던 2020년 한 차례를 제외하고 2008년부터 매년 SCM 공동성명에 담겼다.

성명에는 ‘북한을 포함한 모든 역내 위협에 대비해 미 측의 재래식 억제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는 문구도 포함된다고 한다. 주한 미군 감축과 함께 역할 변경까지 언급한 내용이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은 주한 미군의 역할을 대북 억제만이 아니라 대중(對中) 견제로도 바꾸려 하고 있다. 감축·이전도 끊임없이 언급하고 있다.

주한 미군 감축과 역할 변화는 한반도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대북 대응 역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그 역량은 우리 군이 채울 수밖에 없는데 불안한 면이 없지 않다.

이번 SCM 공동성명은 우리에게는 도전이고 김정은에겐 호재일 것이다. 다만 이재명 대통령이 잘한 것이 있다. 원자력 잠수함 개발의 선언이다. 바로 그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원자로도 우리가 개발하고 거기에 맞는 농도의 연료를 미국에서 공급받게 된다”며 이어 한국이 건조할 핵수함은 미국의 대형 핵추진잠수함인 ‘버지니아급’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 대양을 가로지르는 버지니아급 잠수함은 90% 이상의 농축 우라늄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한국 안보 수요에 맞고 한국의 수역, 지형에 맞는 모델을 해야 한다”며 “농축 우라늄 50% 이내 모델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현재로선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한국이 개발중인 소형모듈원자로(SMR)에 맞는 연료를 공급받게 될 것이라는 취지다. 김정은에게 더 이상 우리가 눈치보는 일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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