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일본식 백지수표 투자’ 요구
김정관 “우리 입장 끝까지 지킬 것”
APEC 앞두고 타결 가능성 ‘희박’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한미 간 3500억 달러(약 50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협상이 현금 투자 비중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미국이 제시한 8년간 총 2000억 달러 현금 투자 요구를 우리 정부가 부담을 이유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미 간) 어느 정도가 적절한 수준인가를 두고 굉장히 대립하고 있다”며 “미국은 현금 투자 비중이 더 커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우리는 국민 경제와 외환시장에 부담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함께 미국을 방문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과 한미 관세 협상 후속 협의를 마치고 이날 새벽 귀국했다. 그는 “시한을 정해놓진 않았고, 우리의 입장이 관철될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협상의 3대 원칙으로 ▲양국의 상호이익 ▲프로젝트의 상업적 타당성 ▲금융·외환시장 안정성을 꼽았다.

김 장관은 “외환시장 영향과 부작용에 대해 미국 측이 상당 부분 이해를 보이고 있다”며 “미국의 선(先)투자 요구도 일부 접은 상태”라고 전했다. 다만 그는 “미국이 요구하는 현금 투자 규모를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렵다”며 “국민 경제와 시장 영향을 고려할 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용범 정책실장도 “일부 진전은 있었지만 핵심 쟁점에선 양국이 여전히 팽팽히 맞서고 있다”며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극적인 타결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타결된 관세 협상에서 미국이 한국산 제품에 부과할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투자 방식과 규모를 놓고 협상은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이 가운데 직접(현금) 투자를 5% 이내로 제한하고, 나머지를 보증 형태로 대체하려 했지만, 미국은 일본과의 협상 사례처럼 ‘현금 중심 투자’를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이에 한국은 분할 투자 방식을 제안하며 절충점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한국이 매년 250억 달러씩 8년간 총 2000억 달러를 투자하고, 나머지 1500억 달러는 보증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정확히 확인드리긴 어렵지만 그런 논의가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미는 투자 규모뿐 아니라 투자 이익 배분 방식과 투자처 선정 방식 등 세부 조건에서도 이견을 보이고 있다. 정부 내부에서도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극적인 타결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CNN 인터뷰에서 “양국 간 입장을 조율·교정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협상 속도를 늦추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김 실장도 “APEC 개막까지 추가 대면 협상 시간이 없다”며 “타결 기대는 낮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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