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의 무게 가족 명절에서 나의 명절로
러닝화·피부시술·멘탈케어 소비 200%↑
‘1인 명절’ 시장, 실속 vs 프리미엄 양극화

[천지일보=양효선 기자]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은 해외로 향하는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차례보다 휴식’을 택한 ‘혼추족(혼자 추석을 보내는 사람)’이 늘면서 명절의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천지일보 2025.10.07.
[천지일보=양효선 기자]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은 해외로 향하는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차례보다 휴식’을 택한 ‘혼추족(혼자 추석을 보내는 사람)’이 늘면서 명절의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천지일보 2025.10.07.

[천지일보=양효선 기자] 올해 추석 명절의 풍경이 바뀌었다. 가족이 함께 모이던 자리에 ‘혼추족(혼자 추석을 보내는 사람)’이 늘었고 선물보다 ‘나를 위한 소비’를 택하는 ‘미코노미(Me-conomy)’가 명절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AI 기반 유통 데이터, 카드 결제 빅데이터, 소비자공익네트워크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올해 명절 소비의 핵심 키워드는 ‘함께보다 혼자’, ‘의례보다 실속’이다. 가족의 안부보다 나의 회복, 남을 위한 선물보다 나를 위한 보상이 중심이 된 셈이다.

2023년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중은 35.5%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들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163만원으로 전체 가구의 58.4% 수준이지만 주거비를 제외하면 여가·건강·자기관리 항목이 빠르게 늘고 있다. AI가 분석한 올해 추석 소비 패턴은 명절의 의미가 ‘가족 중심 행사’에서 ‘자기 돌봄의 시간’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절반이 “명절엔 쉰다”… ‘함께보다 혼자’ 뚜렷

소비자공익네트워크가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 추석 지출 계획’ 조사에 따르면 올해 1인당 평균 지출 예산은 71만 2300원으로 전년 대비 26.4% 늘었다. 하지만 그 돈은 차례상보다 자신을 위한 휴식과 소비에 쓰였다. 응답자의 46.8%가 “명절 기간 집에서 쉰다”고 답했으며 귀성·친척 방문은 36.4%로 줄었다. 전통 방식의 차례를 지내겠다는 응답은 13%에 불과했다.

20~30대 1인 가구의 60% 이상은 “차례 대신 여행이나 자기개발에 돈을 쓰겠다”고 답했다. 인천공항에서 만난 직장인 김모(32) 씨는 “몽골 사막 트레킹을 위해 동호회원들과 반년 전부터 준비했다”며 “부모님께는 모바일 상품권으로 마음을 전했다”고 말했다. 명절을 ‘의무’가 아닌 ‘회복의 시간’으로 여기는 인식이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

◆ ‘혼추족’ 위한 명절… 유통가 1인 소비 전면전

유통업계도 ‘혼추족’을 위한 명절 전략을 강화했다. 편의점과 대형마트는 1인 도시락, 간편식, 소형 선물세트 등 실속형 상품을 잇따라 내놓았다. CU는 떡갈비·산적·모둠전 등 11가지 반찬을 담은 ‘한가위 11찬 도시락’을 선보였고 이마트24는 ‘추석큰.Zip’ ‘보름달한판’ 도시락으로 혼추족의 식탁을 채웠다. GS25의 ‘혜자 추석명절 도시락’, 세븐일레븐의 ‘오색찬란풍성한상 도시락’도 빠르게 완판됐다.

소액 선물세트와 프리미엄 음료, 지역 특산품을 결합한 ‘혼자서도 풍성한’ 명절 상품도 인기를 끌었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명절은 가족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소비하는 시즌”이라고 말했다.

추석 연휴 서울의 한 1인가구 거주자가 노트북 앞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혼추족(혼자 추석을 보내는 사람)’이 늘면서 명절 소비 트렌드가 가족 중심에서 개인의 휴식과 자기돌봄으로 이동하고 있다. (출처: 챗GPT)
추석 연휴 서울의 한 1인가구 거주자가 노트북 앞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혼추족(혼자 추석을 보내는 사람)’이 늘면서 명절 소비 트렌드가 가족 중심에서 개인의 휴식과 자기돌봄으로 이동하고 있다. (출처: 챗GPT)

◆ 대형마트·백화점·온라인몰… 실속 vs 프리미엄 양극화

대형마트는 제수용과 먹거리 중심의 할인전에 집중하며 장바구니 부담을 낮췄다. 이마트는 송편·식혜·빈대떡 등 제수용 품목을 대폭 할인했고 롯데마트는 800여종의 선물세트를 최대 30%까지 낮추며 구매 금액별 상품권을 증정했다.

반면 백화점은 ‘희소성’과 ‘프리미엄’으로 차별화했다.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은 온라인 예약 판매를 확대하고 희소 과일, 한우 세트, 맞춤형 선물세트 등 고급 라인업을 강화했다. 갤러리아백화점은 프랑스·독일 소품, 분청사기 도자기 등 예술 감각을 더한 컬렉션으로 고급 고객층을 공략했다.

온라인몰은 대규모 할인과 배송 경쟁으로 열기를 더했다. G마켓은 ‘가을여행 특별전’을 열어 힐링형 여행상품을 기획했고 SSG닷컴의 주류·와인 사전예약 매출은 전년 대비 26.6% 급증했다. 모바일 상품권과 ‘카카오톡 선물하기’ 매출도 동시에 상승하며 비대면 명절 소비가 완전히 정착했다.

◆ ‘미코노미’ ‘정서소비’, AI가 본 새로운 명절 코드

AI 기반 카드 결제 빅데이터 분석에서도 ‘미코노미(Me-conomy)’ 흐름은 분명했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최근 2년간 러닝·피부관리·정신건강 관련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러닝 결제 건수는 203%, 이용 금액은 216% 급증했다. 30대가 전체의 44.8%를 차지했고 여성 비중도 5.9%포인트 상승했다. SNS상 ‘트레일러닝’, ‘나이트러닝’ 키워드 언급량은 4.5배 늘었다.

피부미용 시장도 ‘저속노화(Slow Aging)’ 바람이 거세다. 100만원 이상 고액 시술 결제 건수는 31.2% 증가했고 30대 남성 고객 이용률은 무려 73.7% 급증했다. 여성 고객 비중은 여전히 76.6%지만 남성의 성장세가 뚜렷하다.

신한카드가 8월 25일 발표한 ‘미코노미(Me+Economy)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정신건강의학과 이용 건수는 2023년보다 11.4% 늘었다. 20대는 ‘진로·연애’, 30대는 ‘아동·부부·직장’, 40대는 ‘청소년 자녀’, 50대 이상은 ‘우울·무력감’을 주제로 상담했다.

업계 관계자는 “명절 스트레스와 관계 피로를 스스로 관리하려는 정서소비(Empathic Spending)가 일상화됐다”며 “이제 마음 돌봄도 명절 준비의 일부가 됐다”고 말했다.

◆ 건강·힐링 중심으로 진화한 명절 상품

식품업계는 ‘건강’과 ‘실속’을 키워드로 선물세트를 재편했다. 

대상 청정원은 저당 드레싱·홍초 세트 등 ‘로우태그(LOWTAG)’ 라인업을 확대했고 CJ제일제당은 ‘저당 양갱’과 ‘슈가라이트(Sugar Light)’ 디저트를 선보였다. 동원F&B는 3만원대 실속 참치세트를, 동원홈푸드는 저당·저칼로리 소스로 구성한 ‘비비드키친’ 세트를 내놓았다.

호텔업계는 프리미엄과 실속을 동시에 겨냥했다. 롯데호텔은 김치찌개 4팩 세트를 10% 할인하고, 서울신라호텔은 맞춤형 햄퍼와 ‘유니 에코백’을 구성했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서울 스테이케이션’ 패키지를 통해 숙박, 한복 대여, 포토 촬영, 시티투어버스 이용권을 결합한 호캉스형 상품을 출시했다.

◆ 명품·쇼핑몰, ‘체험형 명절’로 진화

명품 브랜드는 가족과 개인 소비자를 모두 겨냥했다. 루이비통은 뷰티 키트 증정 이벤트를, 디올은 ‘달 보자기’ 포장 서비스를 제공했다. 몽블랑은 55만원대 ‘픽스 컬렉션’ 수성펜을 내놨다.

스타필드와 코엑스몰, IFC몰 등 대형 쇼핑몰은 체험형 이벤트로 유동 인구를 끌어모았다. 스타필드는 전통놀이·스낵 게임존을 운영했고 코엑스몰은 한글날 기념 ‘한글 사랑 축제’를, IFC몰은 코스메틱 페어와 경품 이벤트를 열었다.

백화점의 팝업스토어 경쟁도 치열하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1~9일 아디다스 팝업, 7~19일 ‘비밀의 아이프리’ 팝업을 운영한다.

롯데백화점은 ‘가을 정기 세일’과 ‘웨딩 페어’로 패션·뷰티·라이프스타일 팝업을 선보였으며 현대백화점은 전국 점포 150여개 팝업스토어를 동시에 운영했다.

◆ 지역 유통사, 특산물과 직거래로 실속 공략

지역 유통사와 중소 슈퍼마켓은 지역 특산물로 승부수를 띄웠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전국 직거래 장터와 직매장에서 과일·선물세트 할인, 체험형 팝업을 운영했다.

유통사들은 긴급 배송·예약 배송 서비스를 확대하고, 택배사와 협업해 물량 분산에 나섰다. 포장·매장 픽업·멤버십 혜택 강화로 소비자 편의도 높였다.

다만 과도한 할인 경쟁, 재고 부담, 물가 상승 등 수익성 악화 우려도 제기된다. 업계는 할인율 투명화, 재고 최적화, 옴니채널 전략으로 대응 중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명절 유통 전략은 실속과 프리미엄 양극화가 뚜렷하며 향후 경쟁력은 물류 역량, 브랜드 신뢰, 디지털 강화 여부에 달렸다”고 분석했다.

결국 소비자는 과도한 ‘할인’보다 실질적인 혜택과 서비스를 기준으로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명절 소비로 이어진다는 조언이다.

AI가 포착한 2025년 추석 소비의 변화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다. 가족 중심 의례에서 벗어나 개인의 휴식과 자기돌봄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면서, 명절은 ‘전통’과 ‘현대’, ‘정서’와 ‘실속’이 공존하는 시대로 진입했다. 이제 추석은 누군가를 위해 준비하는 날이 아니라 나 자신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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