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사탕’에서 ‘어쩔 수가 없다’까지
BIFF가 키운 한국영화 30년사
아시아 신인들 요람 역할 톡톡
올해 BIFF 기대작에 큰 관심

천지일보 일러스트. (영화 포스터: 각 배급사)
천지일보 일러스트. (영화 포스터: 각 배급사)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아시아 최대 영화 축제인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지난 17일 개막해 26일까지 열흘간 부산 영화의전당과 해운대 일대에서 열린다. 주말을 맞아 각종 영화들이 관람객 인파를 맞이하고 있다. 

1996년 첫 막을 올린 이래,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이고 아시아 영화의 가능성을 세계무대에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해왔다. 올해는 30주년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경쟁 섹션 신설, 프로그램 개편 등 새로운 도약을 알리는 시점이어서 영화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영화 도약의 발판 된 BIFF의 출발

부산국제영화제의 시작은 단순한 지역 영화제가 아니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는 해외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기 어려웠고, 신인 감독들은 작품을 발표할 무대조차 마땅치 않았다. 이를 극복하고자 부산은 국제영화제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마련했다. 초창기부터 ‘신인의 발굴’과 ‘아시아 영화의 중심지’라는 정체성을 내걸며 출발했고, 실제로 수많은 감독들이 BIFF에서 첫선을 보인 작품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됐다. 특히 1999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은 BIFF 개막작으로 상영되며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형상화한 연출로 국내외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이후 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면서 한국영화가 가진 깊은 서사를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천지일보 2025.09.20.
ⓒ천지일보 2025.09.20.

◆‘파수꾼’에서 ‘한공주’ 등 해외 무대로

2010년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은 BIFF 뉴 커런츠상을 거머쥐며 단숨에 독립영화계의 샛별로 떠올랐고, 곧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와 홍콩국제영화제에서 연이어 주목을 받았다. 작품 속 청소년의 불안과 갈등은 국경을 넘어 공감대를 형성했다.

2011년에는 연상호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이 BIFF에서 세 개의 상을 휩쓸며 화제를 모았다. 이후 칸 감독주간에 공식 초청되며 한국 애니메이션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이 사회적 불평등과 폭력을 묘사하는 데도 유효할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였다.

2012년 오멸 감독의 ‘지슬’ 역시 BIFF에서 다관왕을 차지한 뒤, 이듬해 선댄스 영화제 월드시네마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제주 4·3 사건이라는 민감한 역사를 다루면서도 서정적이면서 강렬한 미장센을 보여주어,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1분 만에 결정했다”는 일화를 남겼다.

2013년에는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가 BIFF 시민평론가상과 무비꼴라쥬상을 수상하며 출발했다. 이 작품은 곧 로테르담에서 타이거상을, 마라케시 국제영화제에서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직접 시상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성폭력 피해 소녀의 서사를 담담히 풀어낸 이 작품은 국내외에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며, 한국 독립영화의 새로운 좌표로 기록됐다.

2014년 김대환 감독의 ‘끝없는 겨울(End of Winter)’은 BIFF 뉴 커런츠상을 수상한 뒤, 할리우드 리포터 등 해외 매체로부터 “가족 관계의 미묘한 결을 섬세하게 담아낸 수작”이라는 평을 얻었다. 감독의 첫 장편이었음에도 절제된 연출과 연기 디렉팅으로 국제적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2019년에는 베트남 영화 ‘롬(Ròm)’이 뉴 커런츠 부문에서 수상하며 BIFF의 아시아 영화 지원 정신을 드러냈다. 한국영화 역시 같은 해 여러 신작들이 소개되며 해외 배급사와의 접점을 넓혔다.

2020년대에 들어서도 BIFF는 한국과 아시아 영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진원지로 기능했다. 2022년 싱가포르·한국 합작영화 ‘아줌마(Ajoomma)’는 BIFF 상영 이후 대만 금마장영화제 후보에 오르고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출품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23년에는 오정민 감독의 ‘계절의 집(House of the Seasons)’과 김다민 감독의 ‘FAQ’가 BIFF 오로라미디어어워드 등을 공동 수상하며 새로운 세대의 가능성을 열었고, 지난해 2024년에는 박리웅 감독의 ‘그 새벽의 땅(The Land of Morning Calm)’이 뉴 커런츠 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한국적 정서와 장르적 감각이 결합한 작품”이라는 국내외 평을 얻으며 후속 성과가 기대되고 있다.

◆30년 새 역사 올해 BIFF, 기대작 TOP5

이처럼 지난 30년 동안 부산국제영화제는 신진 감독들의 도약 무대이자, 한국과 아시아 영화가 세계 영화계로 진출하는 관문으로 자리매김했다. BIFF에서의 수상은 곧 해외 영화제 초청으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국내 영화산업의 다양성과 실험성을 자극하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올해 제30회 영화제는 더욱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관객을 맞고 있다.

개막작으로는 박찬욱 감독의 블랙 코미디 스릴러 ‘어쩔 수가 없다’가 개봉돼 큰 관심을 받았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아시아 각국의 신작 14편이 ‘부산 어워드(Busan Awards)’를 두고 경쟁하는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돼 영화제의 긴장감을 높인다. 또한 ‘미드나잇 패션(Midnight Passion)’ 섹션이 확대되며 장르 영화 팬들에게도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주목되는 한국영화 기대작으로는 먼저 ‘Audition 109(짱구)’가 있다. 배우 정우가 각본·공동 연출·주연을 맡은 첫 연출작으로,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미 화제가 크다. 그리고 올해 신설된 경쟁 섹션에 한국 영화로 유일하게 초청된 임선애 감독의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은 실연의 아픔을 판타지적 상상력으로 풀어내며 치유와 성장을 그린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그저 사고였을 뿐’은 사건의 파장을 통해 이란 사회의 현실과 인간적 딜레마를 묘사한다. 올리버 락스 감독의 ‘시라트’는 사막을 배경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탐구하며 신화적 체험을 선사하고,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센티멘털 밸류’는 가족의 갈등과 화해를 통해 삶과 예술의 의미를 묻는다. 여기에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서 상영되는 긴 러닝타임 작품으로, 사회적 인문적 감성이 강할 것으로 기대되는 왕민철 감독의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이 있다.

30주년을 맞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단순한 기념 행사가 아니라 한국 영화와 아시아 영화의 미래를 향한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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