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 상징’ 민생경제 협의체
여야 신뢰 붕괴로 파행 조짐
전문가 “최종책임은 李에게”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여야 지도부 오찬 회동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악수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2025.9.8 (출처: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여야 지도부 오찬 회동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악수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2025.9.8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김민철 기자] 여야 합의로 추진될 ‘민생경제 협의체’가 첫 회의를 열기도 전에 좌초 위기에 몰렸다. 출범을 통해 민생 현안을 신속하게 논의하자는 취지였지만 여야 간 불신과 정치적 갈등이 겹치며 사실상 출범부터 흔들리고 있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생경제 협의체는 여야의 공감대 속에 순조롭게 출항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입장 차가 뚜렷하게 드러나며 암초에 걸렸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은 교섭단체 대표연설 도중 막말 논란을 일으킨 송언석 원내대표를 향해 줄기차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 회담에서 공식 논의된 사안인 만큼 협치에 응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협의체 첫 회의를 16일 이전에 열자고 제안했지만 진전이 없는 상태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민주당에 제안은 하고 있다”면서도 “사과를 전제로 해야 협의체를 추진하겠다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수석들 간 소통은 하고 있다”고 밝혔다.

협의체 출범 여부는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불투명하다. 설령 출범한다 해도 난관은 여전하다. 민주당은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검찰청 폐지 및 공소청·중수청 신설, 기획재정부 분리, 금융당국 개편 등이다. 특히 이와 연계된 금융감독위원회 설치법 등이 함께 처리되지 않으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경우 여야 대치가 격화되며 협의체는 사실상 첫발조차 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여야는 지난해 10월 28일에도 ‘민생 공통공약 추진 협의기구’를 출범시키며 반도체특별법, 저출생 대응, 소상공인 지원 등 비쟁점 민생법안을 신속 처리하자고 약속한 바 있다. 양당 정책위의장과 원내수석부대표가 참여하는 실무 협의체로 “싸울 땐 싸우더라도 민생법안은 처리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곧바로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의혹들이 정치권을 덮으면서 사실상 동력을 상실했다.

핵심 의제로 꼽힌 반도체특별법조차 상임위 계류와 법사위 공방을 반복했고 민주당은 출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다수 의석수를 가지고 김건희 특검법을 강행 처리했다. 이후 상설특검 후보 추천 규칙 개정안과 양곡관리법,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법, 농어업재해보험법, 농어업재해대책법 개정안 등 이른바 ‘농업 4법’도 일방적으로 처리하면서 협의체는 ‘출범 기념사진’만 남긴 채 실질 성과 없이 사라졌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왼쪽)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천지일보 2025.09.05.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왼쪽)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천지일보 2025.09.05.

이번 민생경제 협의체가 첫발도 떼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신뢰의 붕괴’다. 민주당이 여야 합의로 도출한 3대 특검법 수정안을 뒤집은 데 이어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쟁점 법안 강행 처리를 예고했다. 이에 협의체 논의 자체가 동력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권은 여당의 일방적 행보를 문제 삼으며 오는 27일 장외투쟁도 검토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태도 역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모두의 대통령을 향한 통합의 정치”를 강조했지만 내란 수사·재판 등 사법 현안에 대해서는 강경 기조를 유지했다는 평가가 여야에서 동시에 나왔다. 이 같은 기류가 협의체의 실질 가동 가능성에 회의론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통화에서 “이번 파행의 중심에는 3대 특검법 합의 파기가 있다. 여당이 합의를 뒤집은 데는 내부 권력 암투가 자리한다”면서도 “정치적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민생경제 협의체는 다수당과 집권 최고책임자의 의지에 달려 있는데, 최근 대통령 기자회견만 보더라도 야당과 협치할 생각이 별로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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